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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18. 2019

보다

양조위처럼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선생님께서 영화를 틀어주셨다. 자기 인생 최고의 영화라며 극찬하셨던 그 영화는 ‘무간도’였다. 영화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배우 ‘양조위’였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알쏭달쏭했다. 하지만 깊은 호수처럼 우수에 찬 그 눈빛은 인상적이었다. 중국 영화에도 관심 없고 그가 누군지도 몰랐던 나는 한순간에 반했다. 그에게 끌려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같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좇게 되었다. 그의 눈빛을 보는 것이 내 감상의 일 순위였다. 

색계


사람들은 양조위의 매력을 ‘몰입’이라고 꼽는다. 어떤 배역이든 몰입해서 그 사람의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조위라는 배우에게 빠져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양조위는 자신은 몰입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맡은 배역의 캐릭터가 되려고 하기보다 그냥 자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이나 몸짓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양조위였다. 백만 가지 표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보는 것으로 ‘제공’할 줄 아는 배우였다. 


이렇게 무언가를 ‘보다’라는 것은 오묘하다. 일반적으로 보는 것은 정보나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수용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뜻도 다르다. ‘Look’과 ‘Watch’는 해석하면 어떤 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지켜보는 것이다. 시선에 중심을 둔다. 하지만 ‘See’는 다르다. 시력이 아닌 머리와 마음을 사용해 바라보는 것이다. ‘See’의 또 다른 뜻은 ‘이해하다’다. 결국, 보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는 것이다. 그런 보기를 할 줄 아는 양조위였기에 사람들이 그의 눈빛이 달라 보였을지 모른다. 


해피투게더


놀라운 것은 그가 연기를 위한 도구로만 제공과 수용의 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조위는 그의 여자 친구 유가령도 ‘See’로 봤다. See를 히브리어로 해석하면 ‘깊이’ 아는 것이다. 상대의 모습 이름만이 아닌 성격과 생각 성(姓)에 대한 것까지 말이다. 깊이 있는 보기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다. 그것은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것도 보통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 말이다. 양조위는 연예계 활동 중 납치를 당하고 수모를 겪은 유가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숱한 루머 속에서도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깊은 보기와 이해에서 나온 사랑 때문 아니었을까? 


중경삼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라. 내게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보고 얻기만 할 뿐 주는 것은 없는데 왜 따뜻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보는 것으로 나도 내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에서 나온 사랑을 상대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게 작은 것일지라도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관계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보고 얻기만 하려는 이기가 아닌 이해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보기를 해야겠다. 누구든 “I see you.”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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