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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V를 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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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14. 2021

TV와 OTT의 관계

그리고 시청자의 역할

라디오, TV 등 콘텐츠를 접할 매체가 한정되어 있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콘텐츠를 즐길 창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굳이 정해진 시간이 아니더라도 컴퓨터, 스마트폰을 통해 대중매체 속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더불어 유튜브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은 TV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정되어 있던 시청자들을 분산시켰다. 기존 유선 케이블·위성TV 가입을 해지하는 현상을 뜻하는 ‘코드커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 두 매체 간 콘텐츠를 규정하는 것은 단순했고 편협한 시각에서 나오기 마련이었다. 질 좋은 콘텐츠는 방송국. 날 것의 느낌이 나는 것, 수준 낮은 것은 유튜브. 하지만 지금 이런 수식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TV가 여러 규제에 막혀 콘텐츠에 창의성을 불어넣지 못하는 동안 그보다 자유로운 유튜브는 시청자의 이목을 끌만한 신선한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골라 볼 수 있다는 점도 TV가 가지지 못한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시청자들은 자유롭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었고 광고주들은 마음대로 광고할 수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언택트, 온택트 소비는 더욱 이들의 몸을 불려주었다. 이 때문에 TV는 시청률의 하락과 광고 부족으로 인한 제작비 감소를 겪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경제 용어 중 재화 중에서 같은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재화인 ‘대체재’라는 용어가 있다. 버터와 마가린, 쇠고기와 돼지고기처럼 두 재화가 있다고 할 때, 한 재화의 수요가 감소하면 다른 재화의 수요가 증가하는 관계인 것이다. 지금까지 TV와 유튜브는 대체재 관계에 가까웠다. 유튜브의 수요가 증가하면 TV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다. 이제는 대체재 관계를 넘어 TV 시장의 수요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유튜브에도 방송국에 버금가는 기술과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콘텐츠를 즐기는 ‘스낵 컬처’는 이제 옛말이다. 이제 길이의 길고 짧음보다는 재미있냐, 신선하냐가 더 중요해졌다. 지금은 장시간, 장편으로 이루어진 콘텐츠가 유튜브에 올라와도 재미만 있다면 시청자는 그 콘텐츠를 소비한다. 


유튜브와 콘텐츠는 TV에 위협적이기는 하나 TV 자체가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TV의 유튜브 대응 방법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맞불 작전을 놓기에는 이미 정해진 규제와 제약이 심하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TV의 대응책은 유튜브를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활용하는 것이다. 보완재는 두 재화를 따로따로 소비했을 때의 효용을 합한 것보다 함께 소비했을 때의 효용이 증가하는 재화를 말한다. 커피-설탕, 펜-잉크, 바늘-실, 버터-빵처럼 두 재화 중 한 재화의 수요가 증가하면 다른 재화의 수요도 증가하며 ‘협동재’라고도 불린다.


방송국의 초기 유튜브 활용법은 시청자의 스낵컬처 시청 형태를 겨냥해 이전에 방영한 영상의 기존 길이에서 하이라이트로 줄여 올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방송 내에서 유튜브 방송을 함께 촬영하거나 유튜브 전용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은 방송국에서 볼 수 없고 오직 유튜브로만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콘텐츠에 화제성이 부족하면 사람들이 보지 않고 넘어가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상쇄할 방법은 TV에서 방영하거나 방영된 기존 콘텐츠를 활용한 부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TV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콘텐츠는 화제성은 잡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시청자의 눈에 한 번은 들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잘 활용하는 방송사는 tvN이다. tvN이 선보이는 기존 콘텐츠에서 나오는 다양한 스핀오프 방송과 드라마 비하인드 영상은 TV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유튜브도 방송과 다른 미디어를 잘 활용해왔고 하고 있다. 많은 유튜버가 영화나 드라마 리뷰, 코멘터리 영상을 올리고 있고 유튜브가 방송의 쇼케이스 창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성공한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들은 활동 범위를 TV 시장으로 넓히고 있다. 지금은 다양한 세대가 유튜브를 접하지만, 여전히 이 사람이 누구인지, 이 사람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유튜버들의 TV 진출은 TV에만 익숙한 시청자들을 유튜브 시청자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얼굴이 필요한 TV 시장과 더 많은 시청자를 모으려는 유튜브. 이 둘의 관계는 경쟁 관계가 아닌 악어와 악어새처럼 협력 관계를 이루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관계 유지는 유튜브 시장에 변화를 주고 있다. TV와 유튜브의 방향의 결은 아주 달랐다.  유튜브, OTT 시장은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었다. 공익성, 윤리 등 여러 가치가 적용되고 시청자, 심의위, 언론 등 TV에 있는 각종 제어장치가 이들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TV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면에서 수위가 높은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었다. 유튜브에는 금전에 대한 욕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아야 돈이 벌어지기 때문에 도가 지나치고 선을 넘는 내용의 방송을 하게 된다. 범죄자 조두순 출소 후 일부 유튜버들이 벌인 행태만 봐도 이들 방송에 공익성과 윤리를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제어하는 것이 시청자다. 지금은 표현의 자유를 무기 삼아 마음대로 하던 것이 이전보다 쉽지 않아졌다. TV를 향한 엄한 잣대가 유튜브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돋보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에 대한 시청자 대다수의 검증과 비판이 바로 따라온다. 그것이 출연자라면 인성과 과거 문제에 대해서, 콘텐츠와 관련된 것이라면 내용과 소재, 수위에 대해서. 그리고 유튜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 방송을 한다. 이들이 시청자의 힘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청자가 경제의 원천이고 이들의 존망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튜브는 자신을 향한 규제와 견제가 강해지는 것을 막기 쉽지 않다. 걸러지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이었던 유튜브도 점점 TV의 기준에 맞춰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수위가 높거나 광고의 도가 지나쳐 질이 떨어지는 콘텐츠에 대한 규제와 엄한 잣대는 시청자 참여의 순기능이다. 문제는 잣대를 가장한 공격이다. 피지컬 갤러리의 <가짜 사나이>는 가학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문구를 영상 시작 전 보였음에도 시청자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방송 출연자들은 그들의 과거와 인성 관련해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일부 시청자의 이런 공격적 모습을 다른 시청자들이 비판하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에 방송이 몸을 사리는 시대다. 시청자가 잣대를 잘못 댄다면 무색무취의 콘텐츠의 양산될 것이고 시청자는 ‘답답한 불편러’의 꼬리표를 뗄 수 없을 것이다. 도가 지나치지 않으면서 참신함을 느낄 콘텐츠가 나올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키 역할을 해야 한다. 규제, 규범 등은 한순간에 효력을 발휘하고 사라지기보다 오랜 시간 다듬어지면서 적용되는 것이고 관련자들은 적응하는 것이다. 지금 미디어 시장은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의 등장에 따른 새로운 경계 범위와 수위의 정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을 겪는 중이다. 콘텐츠의 질과 형태를 유지하는 데 크게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도 시각을 넓혀 지나친 채찍질만 하기 보다 시간을 갖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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