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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V를 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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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r 09. 2021

OGN의 종언

2020년 12월. 우리나라 TV 게임 채널 OGN이 폐국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있다면 내리막길을 걸어 사라지는 것도 있다. 하지만 OGN이 후자의 길을 걸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광적으로 즐겼고 30대가 된 지금도 종종 틀어보던 채널이 없어진다고 하니 마치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기억을 걷는 시간

OGN과 언제 처음 만났는지 생각해 보자면 친구 집에서 유선 방송을 봤던 기억을 열어봐야 한다. 당시 우리 집은 유선 방송이 나오지 않아 지상파 방송밖에 볼 수 없었는데. 친구 집에 가서 TV를 보니 4개 방송 말고도 여러 가지 방송이 나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부러웠던 것은 만화 전문 채널인 ‘투니버스’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온종일 만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어린이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이겠는가. 그런데 그 투니버스에서 만화만이 아니라 종종 게임을 중계하기도 했다.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이라는 이름의 대회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혼자 컴퓨터와 맞붙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흥미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렇게 남의 집 셋방살이처럼 시작한 게임 방송은 2000년 ‘온게임넷’이라는 게임 채널 개국과 당당하게 방송을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스타크래프트뿐만 아니라 ‘포트리스 2’, ‘킹덤 언더 파이어’, ‘아트록스’, ‘피파’, ‘NBA Live’ 등 다양한 게임으로 대회를 열며 나를 저녁 시간대 TV 앞으로 불러 세웠다. 스타크래프트 대회는 PC방이라는 가성비 좋은 인재 양성소와 맞물려 다양한 프로게이머 스타를 배출했고 이 대회의 영향으로 나중에는 프로 리그가 열리는 등 우리나라를 게임 강국(제작 말고 하는 것만)으로 만들었다.


이런 대회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특히 즐겨봤던 것은 정말 아름다웠던 길수현 누나가 진행했던 <생방송 게임콜>이었다. 오락실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을 전화기 버튼으로 조작해 게임을 하는 방송이었는데. 이보다 더 오래전 있었던 SBS <달려라 코바>와 비슷한 방송이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실시간으로는 방송에 참여할 수가 없어 사연 게시판에 글을 올려 당첨이 되어 방송에 나갈 수 있었다.


TMI를 방출하자면 방송에서 전화기로 게임 조작을 하려면 버튼이 길게 눌리는 전화기여야 한다. 어느 날 길수현 누나에게 내가 시청자 사연에 당첨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누나가 방송 참여 여부를 묻고 전화기를 한번 점검해보자고 해서 버튼을 눌렀는데 집에는 버튼을 누르면 짧게 끊어지는 전화기밖에 없어서 못 할 뻔했다. 집에 있는 전화기를 다 뒤져 겨우 하나 찾아 방송에 참여했다. 그때 했던 게임은 ‘철권 태그 토너먼트’. 당첨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상대에게 당했다.


이후에도 나는 온게임넷 시절, OGN 시절 모두 시청자로서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프로게이머와 VJ(비디오자키)를 활용한 예능도 있었고 다큐멘터리나 게임 정보 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의 방송이 있었기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한 프로그램에는 게시판에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중 한 방송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블랙 앤 화이트>라는 게임을 선물 받기도 했다. 직관도 자주 했는데 코엑스 아셈 메가웹스테이션은 물론이고 고3이 되어서도 용산 E-스타디움에 찾아가 직접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봤다. 남들처럼 응원 문구를 적어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을 즐겼던 내가 다른 방식으로도 소비하는 법을 즐기게 되면서 남들도 나처럼 즐길 수 있는 방송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OGN PD에 도전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을까?

게임 강국이라면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만큼 콘텐츠도 풍부할 텐데. 왜 이리되었을까? 어느 하나 콕 집어 말할 수 있기보다는 다양한 문제점이 얽히고설켜 복합적인 문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이전만큼 ‘대박이라고 할 만한 게임이 없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 대박 게임은 전 국민을 들썩이게 하거나 주 시청자층의 관심을 끄는 게임을 말한다. 스타크래프트는 국민 전통 놀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유저를 양산했다. 대회가 열리는 게임이 아니더라도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필두로 각자 개성 있는 게임이 제작되었고 게임마다 탄탄한 유저층이 생겼다. 덕분에 끊임없이 게임을 활용한 콘텐츠가 제작되고 소비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를 받쳐 줄 게임이 부족하다. ‘배틀 그라운드’가 주목받긴 했지만 1인칭 슈팅 게임은 이전에도 ‘서든 어택’ 대회가 그랬듯 대회를 열어도 스타크래프트만큼은 인기가 없었다.


게임 중독이 결코 좋은 말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말이 나올 정도의 게임이 없다. 다른 문화 콘텐츠의 발전으로 즐길 거리가 많아 게임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게임 자체에 있다. 개발사는 함께 오랫동안 즐길 게임을 구상하기보다 유저의 과금 유도만 생각한 게임을 양산하고 있다. 돈이 있어야 꾸준히 게임을 업데이트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유저는 떠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어떤 게임이든 대회 개최는 물론이고 오래 즐길 수 없기에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방송국 자체 문제가 있다. 온게임넷, 투니버스, OCN 등 개성 넘치는 채널을 운영하던 케이블 방송사 ‘온미디어’는 CJ에 인수돼 CJ E&M 소속이 되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색깔을 살렸다면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CJ는 OGN이라는 채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장르를 단순화시켰다. 직접 개국한 tvN은 즐거움을 목표 예능,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세부화하며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지만, 투니버스와 OGN은 20년 전인 2000년보다도 퇴보한 모습이다. 만화는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다. 하지만 CJ는 투니버스를 ‘만화=어린이’라는 공식으로 규정해 어린이 방송 위주로 채널을 편성해 다양한 이가 즐길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OGN은 어떠한가. ‘게임=대회’라는 공식으로 규정했고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 생방송 중계, 재방송 위주로 방송을 편성했다. 게임은 유해하다는 인식이 강하기에 건강한 스포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E-스포츠로 발전시키기 위해 대회를 만들고 유지한 것은 옳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분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놓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전 같은 다양한 자체 제작 방송은 그 수가 줄어들거나 보기 힘든 시간대에 편성됐다.


지금 게임 업계의 추세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외에 대회를 중계할만한 게임이 별로 없다. 있다고 해도 굳이 방송국을 통해 할 필요가 없다. 방송국과 수익을 나눌 바에 직접 중계를 해 수익을 다 가져가면 된다. 유튜브 같은 대체 방송 채널이 있으며 게임 제작사가 자체 중계도 가능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이미 그렇게 노선을 바꾸었다. 더는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가 어려운 OGN은 배틀 그라운드로 주목을 끌려했다. 하지만 이에 버금가는 인기는 얻을 수 없었고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기에 예전 대회와 콘텐츠 재방송 위주로 채널을 운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인기 게임의 부재, 채널 분석과 활용. 두 문제가 맞물린 게 OGN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고 본다. 이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면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권을 다시 따내거나 그만한 게임이 나와야 하는데 이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온게임넷 시절처럼 좀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여러 장르의 콘텐츠를 만들어 본다면 다양한 시청자층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청률과 이에 따르는 광고로 돈을 버는 방송국 입장에서는 시청률도 나오지 않는 방송을 돈을 들여 만들라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방송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인데 해결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지 않았을까?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미 게임 대회를 위해 여러 부분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했기에 다른 데 투자할 여유가 없었을뿐더러 아무리 해도 답이 없으니까 지금처럼 운영했을 것이다.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인턴이 되기 위한 최종 면접에서 ‘OGN 발전을 위해 어떤 방송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수년 전 일이기에 정확한 단어와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게임 채널이지만 <켠 김에 왕까지> 같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이전과 다르게 너무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 중계와 재방송 위주 편성에 그치고 있다. 인기 게임이지만 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끌리지 않을 수 있다. 게임은 대회 말고도 활용 가치가 크다. 외국에서는 게임 OST로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게임 내 설정으로 소설, 만화가 나오기도 한다. 게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 방송을 만들고 싶다. 예전처럼 다큐멘터리였던 ‘G피플’, 정보 프로그램 ‘게임플러스’ 같은 방송 외에 작은 콘서트나 깊이 파고드는 토크쇼 등을 해보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대답에 가운데 앉아 있던 면접관(아마 PD였을 것이다.)은 조소를 보이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안 되면?” 강한 반응에 당황했지만, 실패를 분석하고 보완해 또 다른 방송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그때 또다시 돌아온 질문은 “그래서 안 되면?”이었다. 그 면접관은 내게 쏘아붙이며 계속 물었다.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대체되는 것이 있다. 다른 방송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게임은 굳이 방송국이 아니더라도 유튜브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방송으로 만날 수 있다. OGN에서도 게임 스트리머를 투입해 방송을 만들었다. 하지만 유튜브와 TV에서 잘 소비되는 콘텐츠는 각각 다르다. 많이 경계가 허물어졌지만, 아직도 짧고 굵은 콘텐츠는 유튜브, 리그 경기 같은 호흡이 긴 콘텐츠는 TV에 어울린다. 이 때문에 스트리머를 활용해도 기대보다 방송에 대한 호응이 좋지 않다. 플랫폼의 규제 범위가 다르다는 점도 스트리머의 자유분방함을 묶는 요인이 되어 방송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방송의 재미도 줄었다.


게임 방송국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래전에는 MBC 게임즈가 폐국했고 2020년 3월에는 스포티비 게임즈가 폐국했다. 아프리카 TV가 남아있다고 하지만 다른 채널보다 시청자 확보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많은 게임 리그가 흥행 실패와 광고 판매 부진으로 중단되고 있기에 아프리카 TV가 곧 게임 중계를 내려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문 기사를 통해 OGN이 문을 닫진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송출 인력을 최소한으로 유지해 재방송 위주로 방송 편성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사실상 폐국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게임 전문 채널이 사라지는 것은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파이가 점점 작아지는 만큼 아이들의 선망 직업이었던 프로게이머는 지금보다 덜 선호하거나 희귀 직종이 될 수도 있겠다. 유튜버나 스트리머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가 싫지는 않다. 하지만 게임 채널은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서로 뭉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게임이라는 것이 직접 하면서 느끼는 재미 외에도 보면서 느끼는 재미도 있는 것이다. 그걸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안 되면?” 면접에서 나를 노려보며 몇 번을 똑같이 묻는 면접관을 옆에 있던 다른 면접관이 말렸다. “이제 그만해. 안 되면 그만해야지.”


지금 OGN을 보며 그때 그 면접관들의 반응과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들이 말한 대로 하고자 하는 것이 안 됐을 뿐이고 그만 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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