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출근>의 소통
요즘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방송 중 하나인 MBC <아무튼 출근>은 직장인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활용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비디오와 블로그를 합친 브이로그 소재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많은 유튜버가 활용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방송은 새롭게 느껴지고 재미가 있다. 누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가장 힘든 일은 ‘내가 하는 일’이다. 여럿 모여 자기 힘든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쉴 새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송은 내 일만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네가 하는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에 호소가 아닌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방송도 남의 일상과 직장을 엿보기에 관찰 예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방송국마다 관찰 예능이 포화상태인 지금 과연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방송은 일상을 보여주는 일반적인 브이로그 문법을 활용하지만 하루 동안 일을 하면서 생긴 일, 그 단순하고 일률적인 그 일이 다양해서 새롭게 느껴진다. 여기에 나의 일상을 누군가와 함께 관찰하는 것은 맞지만 내가 직접 나의 일상을 촬영하는 주체성이 있어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관찰 예능과 다르다.
몇 회 방송되진 않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여러 면에서 ‘쿨하다’는 것이다. 쿨하다는 것은 꾸물거리거나 답답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시원하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방송이든 재미를 위해 특정 부분에 힘을 주거나 욕심을 부리기 마련인데 <아무튼 출근>은 욕심이 없다. 곳곳에 보이는 쿨함이 시청자에게 재미를 준다.
첫 번째로 출연자 섭외에 쿨하다. 인기 있는 출연자를 섭외하는 것은 시청자를 끌기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나와 자기 이야기를 소모해버린 출연자에게 느끼는 재미는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튼 출근>은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빠르게 바꾼다. 늘 새로운 출연자의 출연.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를 끌기 좋다. 그리고 이야기가 단순 소모되기보다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출연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는 어린 세대에게는 직업의 체험, 자기 발견을 할 수 있는 교보재로 사용할 수 있다. 일을 하는 성인 세대에게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고충을 공감하는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다. 새롭지만 익숙한, 대척점에 있는 두 단어를 잡을 수 있는 방송은 그리 많지 않다.
두 번째로 이야기 전개가 쿨하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긴장감이나 흥미를 끌기 위해 여러 번 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두 번 해야 그 감정을 느끼지 자꾸 보여주면 답답함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스스로 끊을 줄 안다. 편집점을 만들어 과감하게 끊어버린다. 이 끊는 방식도 유쾌하다. 밈이나 상황에 어울리는 사진, 영상을 활용해 갑자기 끊어져도 재미있게 마무리한다.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 콘텐츠와 유사하다.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센스 있는 편집은 보는 사람의 흥미를 끈다.
또 방송 내용대로 직장 일과 관련된 브이로그에만 집중하며 다른 관찰 예능과 차별점을 둔다. 어느 관찰 예능을 보더라도 한 번쯤은 엄마, 친구 등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쏟거나 이해하기 힘든 기행 등으로 눈길을 끌려고 한다. 이야기가 떨어질 법하면 나오기에 조작과 대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방송에는 그런 것이 없다. 하루의 시작부터 출근, 직장 생활, 마무리. 단순하지만 깔끔하다. 따로 에피소드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 생활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 특정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웃더라도 우리네 비슷한 삶을 보며 괴리감보다 공감이 만들어진다.
세 번째로 진행자가 쿨하다. 또 김구라냐고 할 수 있을 만큼 방송을 다작하는 김구라지만, 김구라만큼 이 방송에 어울리는 사람이 더 있을까? 시사, 경제, 정치, 직업 등 방송에 어울리는 방송인이 있다면 이를 섭외해야 하겠지만 김구라만큼 다방면에 잡지식이 많아 이것저것 전문적인 부분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박선영은 김구라를 완벽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진행자다. 김구라에게 부족한 것이라면 실제 직장 경험이다. 방송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박선영은 직장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볼 수 있고 돌아오는 답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수준 있는 질문에서 묻어 나오는 영리함은 이 방송이 예능이지만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황광희는 자칫 무거워질 법한 방송의 무게를 간간이 덜어준다. 주로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출연자에게 태클을 거는 역할을 도맡는데 끈덕지지 않다. 예능에서는 어떻게든 재미를 찾기 위해 진행자들이 꼬투리를 잡으면 그걸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 방송은 물어뜯지 않는다. 그냥 시원하게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파일럿 방송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움의 장성규가 황광희보다 조금 더 이 방송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박선영과 포지션이 겹치고 직장 생활과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 <워크맨>에 출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황광희라는 카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방송의 시원함이 독이 될까 걱정되기도 한다. 빠른 전개 덕분에 소재로 활용되는 직업이 금방 소모된다. 4~5명의 출연자를 2회분으로 나눠 보여주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새로운 직업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2회 이상 출연해 비슷한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다른 관찰 예능과 차별점이 없다는 점에서 이 예능의 매력은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방송의 무기는 사람이다. 회사에는 사장, 사원 모두 출근해서 일을 하고 고민한다. 사람마다 사연이 다르고 직업별로도 부서나 직종, 직급이 세분화되어 있기에 사람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방송은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나갈 수 있다. 어쨌거나 이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면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에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는 선에서 소재를 이어나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도덕적으로 일하고 있다면 어느 하나 불필요하고 천한 일은 없다. 한 번 수박 겉핥듯 보여준다고 얼마나 특정 직업의 업무를 파악하고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튼 출근>은 지금까지 모두의 위치와 입장에서 업무와 고민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 직장인이 아닌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도 고민을 볼 수 있다는 점. 이런 것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들이 ‘나는 세상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에 대해 쿨하게 돌아보게 했다. 다큐멘터리로만 만들어지기 쉬운 직업이라는 소재를 방송 심의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TV라는 제한된 매체에서 예능으로 가장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