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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Nov 09. 2021

이종필의 세계

따뜻하고 따뜻한

영화 <아저씨>의 신스틸러를 꼽는다면 자신을 예수라 부르고 휠체어에 탄 사람을 걷게 하겠다며 걷어차던 형사가 있다. 이종필이라는 이름의 그 배우는 생활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 어렵던(그렇다고 다른 배우보다 연기를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습이 인상 깊었다. 조연으로 다른 영화에도 많이 불릴 거란 생각에 후속 작품을 기다렸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개그맨 이경규가 전국노래자랑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아저씨의 그 형사가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면달호> 이후 이경규의 새 영화라는 것만큼 배우인 줄 알았던 그가 감독한 영화가 어떨지 궁금해 영화관으로 갔다.


전국노래자랑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애(류현경)의 남편 봉남(김인권)은 가수의 꿈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봉남은 전국노래자랑이 동네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예선에 참여한다. 이외에 음치 시장 주하나(김수미), 회사 상품을 홍보하려는 동수(유연석)와 현자(이초희) 등 다양한 출연자가 각자의 사연을 들고 무대에 오른다.


<전국노래자랑>은 재미는 있지만 그렇다고 대박이라는 말이 나올 만한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요새 잘 나가는 유연석이라는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지금이라도 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종필 감독은 이후 <도리화가>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 참여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잊힐 것 같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극장에 갈 엄두가 안나는 이때 넷플릭스에서 소재와 예고편으로 눈길을 끄는 영화가 있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이름의 영화였다. 이 영화의 감독이 또 이종필이라는 것을 알고 감독의 성향이 달라진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줄곧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감독인데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그런 관심의 눈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생산관리부 이자영(고아성), 마케팅부 정유나(이솜), 회계부 심보람(박혜수) 등을 비롯한 기업 삼진의 말단 여직원들은 진급을 꿈꾸며 틈틈이 영어를 공부한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바쁘게 사는 동안 회사의 폐수 유출을 의심할 장면을 본 자영은 증거를 찾아내려고 친구들과 합심한다.


이종필 감독의 영화를 보면 너무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니 각자 이야기가 많아서 한 영화에 담기 힘들어 보였다. 영화나 영화 속 인물이 인상 깊은 것은 입체적일 때다. 극적인 변화가 있어야 그렇게 느끼기 마련인데 <전국노래자랑>이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모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집단이나 행사 안에 사람을 늘어놓고 그들 한 명마다 이야기를 담는다. 전국노래자랑이라는 대회, 삼진 그룹이라는 기업에 여러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묶여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각자 입체적인 게 아니라 대부분 평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평면적인 것을 여러 개 늘어놔도 그건 평면적인 것이 길게 이어진 것밖에 되지 않는다. 변화의 폭이 좁고 인물의 변화나 이야기의 진행이 예상 가능해 소재의 신선함이나 첫인상에 비해 흥미롭지 않았다. 



그래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종필 감독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인생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기에 각자의 이야기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우리 삶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영화는 또한 초인적이거나 엘리트 위주의 사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흠이 있고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좋았다.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야기나 사람들이 나왔을 때 느끼는 희열도 있지만 그런 영화가 즐비하기에 지겨운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케일이 크지 않고 영화가 화려하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떠한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솔직하게 영화를 만드는 일이 힘들었음을 고백하고 재기를 다지던 그의 모습에서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비슷한 삶을 지낸다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뜻대로 일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런 좌절 속에서도 사람은 다시 일어나 하루를 산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종필 감독은 앞으로도 많은 이의 공감을 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영화를 하더라도 그 움직임이 크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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