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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04. 2021

관심과 오지랖 사이

불편한 사제관계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일하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가까이서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그들의 모습이다. 세대 차이인지 성향 차이인지 몰라도 10년 터울의 그들과 다른 점이 있음을 자주 느낀다. 예전 군대가 시키는 대로 꾹 참고해야 했다면 지금 세대는 웬만하면 참지 않는다. 자기 기준에 아닌 것은 아니라며 의견을 표한다. 그런 모습이 차라리 시원해 보일 때도 있지만 함께 일하는 곳에서 자기 일이 아니라면 관심이 없다며 단호히 선을 그을 때는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앞으로 20년, 30년 이상 차이 나는 세대를 만나게 되면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좋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군대에는 병사를 관리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에게는 상사라고 확실히 지칭할 사람은 없는 편이다. 나름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 더 많은 단체생활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들이 짧은 복무 시간 동안 잘 지내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 틈틈이 말해주곤 했다. 귀찮고 헛된 시간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이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일지라도.


완득이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와 선생님의 관계도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 삼촌과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하는 도완득(유아인)이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담임 동주(김윤석)가 없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동네에서도 불러대니 완득이는 힘들다. 사생활 폭로에 식량까지 빼앗는 이 사람은 자기 가족과도 친하다. 완득은 넘치는 동주의 관심을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다. 


선생이라는 것이 뭘까? 학교, 학원에서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문제를 잘 알려주는 사람, 맡은 과목을 이해하기 쉽게 잘 알려주는 사람. 학문의 위치에서 그렇게 일을 잘하는 사람도 선생이지만 선생(先生) 말 그대로 먼저 산 사람으로서 다음 세대들이 앞으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선생일 것이다. 영화 속 완득에게 동주는 후자의 위치였다.


김윤석


달콤한 말은 순간 듣기 좋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쓴 말은 듣기 불편해도 오래간다. 동주는 완득이 불편해할 만한 말을 자주 한다. 한 방송 인터뷰에서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학생이 말했다. “잔소리는 왠지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라고.


유아인


관심과 오지랖도 비슷하다. 한 끗 차이다. 관심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고 오지랖은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대적일지도 모른다. 이는 관심을 표하는 사람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지만, 그 관심 표현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게 동주는 다른 이에 비해 조금은 특별한 위치에 놓여있는 완득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더 신경 써주는 사람이었다.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점점 변해가는 완득이를 보며 안심의 미소가 새어 나왔다. 결말이 보이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 매력이었다. 또 다른 매력은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 학교 교육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아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사람 냄새나게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생각할 거리는 너무 충격적이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것도 그 주역에 김윤석이 있다는 것도. <타짜>, <추격자>, <황해> 등 너무 세 보이는 역할을 많이 맡아서 그런지 다른 영화에서 부드럽거나 현실에 있을 법한 역할을 하면 기억에 잘 안 남았는데 이런 영화에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래도 경마장의 말처럼 시야를 가린 채 내 앞의 길만 달려가는 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갈 때 정말 사는 맛이 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라는 말은 내게 조금 거창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말이다. 그런 말을 원해서 나서는 것도 아니다. 관심 많고 오지랖 넓은 것일 뿐. 앞으로도 동주 같은 오지랖과 관심 사이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아보려 한다. 물론 내 앞가림이 먼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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