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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ug 24. 2021

그렇게 가족이 된다

상남자의 가족애

좋은 책이나 영화의 재미는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이름을 놓치지 않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볼 때마다 같은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처음 볼 때는 놓쳤던 다른 인물과 장면에 집중하며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빌리 엘리어트


영화 <빌리 엘리어트>도 그런 의미로 내게 명작이다. 기말고사까지 마치며 방학을 기다리는 학생이던 내게 한 선생님이 보여준 이 영화는 그 나이 또래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액션, 공포 장르는 아니었지만 잔잔한 물결처럼 내게 다가왔다. 물론 그때 만난 이 영화에서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빌리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이 영화에서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빌리가 아니었다.


제이미 벨


영국 북부 탄광촌에 사는 빌리(제이미 벨)는 복싱을 배우고 있다. 어느날 체육관에서 우연히 발레 수업을 본 빌리는 여학생들 뒤에서 동작을 따라 하다 윌킨(줄리 월터스) 선생님에게 발레 학교의 오디션을 권유받는다. 반대하는 아버지 재키(게리 루이스) 몰래 발레를 하던 빌리는 체육관에 찾아온 아버지와 만난다.


나이를 먹은 내게 꿈을 이룬 빌리도 장하지만 여기서 더 장하다 느껴진 것은 빌리의 아버지와 형 토니(제이미 드레이븐)였다.


1980년대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가 석탄 산업 합리화를 강행하자 탄광촌 광부들은 정책에 반대하여 장기 파업을 한다. 탄광촌에 사는 빌리 가족은 광부 일을 가업으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당연히 아들들도 해야 하고 이어나가야 하는 일이었다. 먹고 사는 일이 당연히 중요하기에 아버지 재키와 빌리의 형 토니는 파업에 참여한다.


게리 루이스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 탄광에서 벗어나기 힘든 직업은 빌리 가족이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게 했다. 그랬기에 아버지와 형의 입장에서 빌리는 말 안 듣는 녀석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조금씩 금을 내며 들어 온 것이 발레 선생님이다. 헛된 바람을 불어넣는 것은 아닌지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선생님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발레 가르치는 데 얼마면 됩니까?”


발레는 여자들만 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파업 동지이자 동네 이웃인 다른 광부들의 손가락질을 이겨내며 아버지는 일터로 복귀한다. 강성 노조인 큰아들마저 설득하며 둘째 아들 빌리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이다. 빌리는 발레 학교에 합격해 승승장구, 아버지 재키와 형 토니는 깊은 광산으로 들어가며 감동적이면서도 안타까운 대비를 보여준다. 내가 재키나 토니였다면 감당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장 짠했던 것은 세월이 흘러 아버지와 형이 발레리노가 된 빌리의 공연을 보러 간 모습이었다. 지하철을 보며 놀라는 모습에 얼마나 혜택을 누리지 못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들의 도약을 보며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며 나는 빌리의 아버지가 그동안 겪었을 고난이 날아가기를 바랐다. 


사람의 성장은 한도와 시기가 없다. 주인공 빌리도 성장하지만, 아버지와 형도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더욱더 완벽하고 튼튼한 가족이 된다. 외길 인생만 걷는 상남자도 굽히고 희생하는 법을 배웠을 때 더 멋진 사람이 되나 보다. 이런 남자들의 진한 사랑도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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