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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09. 2021

떠나는 모습을 보며

노동요 - 철도 인생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특히 역무원은 헤어짐이 잦은 편이다. 개편이 있을 때마다 근무지 이동을 위해 수많은 역을 옮겨 다닌다. 사람이나 역에 정을 붙일 때쯤 되면 다른 역으로 가서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동료들이야 업무상 통화로 만나기도 하고 훈련을 하면 얼굴을 보기도 하니 헤어짐의 아쉬움이 금방 해소되지만, 은퇴 시기가 되어 모든 근무를 마치고 떠나는 선배들을 보낼 때는 가슴이 아리기 마련이다.


젊은 나이에 회사에 들어와 포부를 가지고 일했을 이들이 말하는 것은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이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때 나이와 같은 어린 친구들이 새로이 들어오고 있으니 감회가 남다른 것이 당연할 것이다.


정식 직원으로서 근무가 끝나면 2년간 추가 근무 기간을 주는데 ‘임금피크제’라는 제도다. 일을 더 하는 대신 원래 받던 것보다 삭감된 급여로 2년을 더 근무하는 것이다.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조금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다른 이의 고용을 위해 임금을 양보하는 것이다, 임금체계가 무너지는 나쁜 제도다 등 말이 많지만 나는 좋은 사람들을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연세 지긋한 선배님들과 함께할 때 좋은 점은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너무 젊은 선수로만 팀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 있는 베테랑 선수들이 있다면 팀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인 능력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며 그들이 후배들을 이끌기도 하고 자신의 비결을 전수해주는 등 팀을 위해 헌신한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산전수전 겪은 사람들이라 상황에 따른 대처 같은 여러 가지 경험을 알려준다. 후배이기도 하지만 한참 어린 직원들이 자기 자식 또래이기에 자식 대하듯 더 챙겨주는 것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직원들은 가끔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들은 더 능청스러우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안다.


나는 옆에서 이것저것 듣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들이 예전에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풀어주는 것도 좋았고 자신이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며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나가면 좋은지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직장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며 내가 만일 같은 일을 겪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림을 그리도록 도움을 주었다.


경험을 얻는 것도 좋지만 존경할 만한 인성을 갖춘 선배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본의든 타의든 일이 줄어들기도 한다. 몇몇 사람은 후배들이 도맡아 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우위를 매개로 떠넘긴다. 하지만 한결같은 자세로 솔선수범하는 모습, 자기 관리에 철저한 모습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존경. 솔직히 말해서 내게 아직도 부족한 말이다. 아직 벗어나지 않은 젊음의 힘만 믿고 주변을 얕보고 나를 과신하는 마음이 내게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하지만 경험 많은 백전노장들과 함께 일하며 조금씩 나를 낮추게 된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와 능력이 있다. 그 모습은 먼 미래의 나를 상상하게 한다.


일하는 동안 수많은 선배가 떠나는 모습을 봤다. 자기가 행한 대로 추후 대우가 따라간다. 주변이 기피하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떠나는 길이 쓸쓸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퇴직 후에도 많은 이가 회자하고 연락을 이어갈 정도로 존경받는다. 나도 박수받고 떠나는 선배가 되고 싶다. 놓인 위치로 받는 박수가 아닌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는 진정한 박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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