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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11. 2021

이기주의에 혀를 내두르다

노동요 - 철도 인생

내가 다니는 이 회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독특한 사람도 아주 많다. 재미있는 점도 있지만 답답할 때도 있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있기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비단 우리 회사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회사가 그럴 것이다) 회사 생활이 처음인 내게 일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회사 속 이기주의의 기본형은 내 일을 모르는 체하거나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는 일정한 인원이 조로 이루어져 교대근무를 하는 곳이라 더욱 특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벌어지는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내가 퇴근했을 때, 즉 근무지를 떠나는 순간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근무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을 미루었다가 인계하거나,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형태로 마무리 짓는 등 태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3개 조로 일할 때 모든 조가 그렇게 일하면 업무가 붕괴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다른 두 조가 일을 대충 하면 남은 한 조에 일이 몰려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일이 너무 쌓이거나 기한이 있어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마주치면 욕이 절로 나오지만 내가 안 하면 일이 안 될 거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하게 된다. 그리고 일이 저절로 처리되기에 또다시 무한 이기주의가 반복된다,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부서 간 집단이기주의를 칭하는 ‘사일로 현상’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음가짐이 회사 곳곳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의 편의에는 안전이 보장되어 있다. 승객들의 편하고 안전한 이동을 위해서는 역무원을 비롯한 모든 직원의 노고가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안전사고에 민감하다. 행여 사고가 나면 빠른 수습으로 다시 정상 운행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끄러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다. 수습이 늦을수록 고객의 불편함은 더해진다. 설령 수습해도 더불어 온갖 싫은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내가 하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일할 때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마땅하나 그게 나여야만 하는 생각이 커 아쉬운 마음이다.


또 다른 이기주의는 ‘갑질’로 드러난다. 이기주의의 기본형이 변형된 것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갑질은 대개 연차가 있거나 직급이 높을 때 가능한 이기주의다.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갑질은 사회 밖으로 드러나지만, 이 정도는 참고 견딜만하다고 여겨지는 갑질은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잦은 편이라는 것이다. 직급이 높을수록 책임져야 하는 일은 많다. 하지만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남에게 미룬다. 심지어 남이 한 일을 내가 한 일처럼 만들기도 한다. '내가 네 시다바리가?'라는 영화 <친구>의 대사가 떠오를 정도다. 갑질 상사의 곁을 떠나면 되지 않느냐고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있지만 희한한 게 이럴 때는 근무지 이동이 잦은 직업임에도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아마 갑의 마음에 들어버린 모양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대물림된다는 것,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익숙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회사 내 이기주의는 아마 사라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전통처럼 받아들이고 보존하려 하면 안 되겠지만. 모두가 ‘네’하는 세상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일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일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도 집단 이기주의에 물들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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