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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Nov 16. 2021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 다양한 사람들

노동요 - 철도 인생

지하철 역무원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 대처 능력이 향상되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만들 때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단점 중 하나도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일부(생각보다 조금 많은) 사람들이 ‘손님은 왕’이나 ‘내 돈 냈으니 내 마음대로’라는 마음가짐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을 하찮게 여기거나 도움받는 때 예의 없는 때가 종종 있다.


근무하면서 별사람들을 다 만났다. 괴짜도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진상도 있다. 지금까지 일하는 동안 만났던 특이한(이라고 순화 표현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보다 심한 사람들은 기억을 기록하는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적지 않았다.


1. 도전! 코디네이터

새벽 4시 조금 넘었을 무렵. 이 시간에도 분주한 사람이 많다. 첫차를 타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셔터를 올리고 문을 열기 전인데도 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바쁜 움직임과 다르게 소리는 일반적인 출근 시간대나 퇴근 시간대와 달리 고요하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차분해진다.


가끔가다 왁자지껄한 경우도 있다. 대개 술에 취한 사람이 밤을 새우고 찾아와 주정을 부리는 경우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사람은 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는 스포츠형을 하고 한 손에 깁스를 하고 문신을 한 반대편 손에는 쇼핑백이 있는 그 남자는 전혀 정체를 예상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시비를 걸고 싶어 온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옷차림이 난해했다. 무슨 해코지를 할까 봐 조금 겁이 날 정도였다.


“저기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무슨 말을 할지, 나는 무슨 말로 대응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던 그때,

“제가 안경이 두 개인데 뭐가 잘 어울리는지 한 번 봐주세요.”

불편한 팔로 낑낑대며 안경을 하나씩 바꿔 쓰며 내게 스타일링을 요청했다. 하나는 극도의 직사각형인 렌즈 작은 안경, 하나는 일제강점기 문학인들이 쓰던 것 같은 둥근 안경. 황당했지만 한편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저 안경은 너무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네요.” 내 픽은 둥근 안경. 시비 걸러 온 것처럼 느껴진 사람은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앞에 있던 거울에서 안경과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떠났다.


2. 너희들도 똑같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양복을 잘 차려입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그 아저씨였다. 한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당한 표정의 아저씨는 자기가 하나 좋은 생각이 있어 이곳에 왔다며 이야기를 펼쳤다. 아저씨의 생각은 이렇다.


- 역에서 게이트를 통과할 때 오가는 사람들이 길 구분 없이 막 다니니 부딪치기 쉽다.

- 특히 비 오는 날은 젖은 우산에 몸이 닿아 불편하기까지 하니 더 불쾌하다.

- 그러니까 바리케이드를 설치해서 나오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사람들이 정해진 곳으로만 다니게 하자.


편의를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게이트 수가 많아 출입이 모두 가능한 게이트를 들어가는 용과 나가는 용으로만 제한하고 울타리를 쳐 구역까지 나눠버리면 사람들의 이동에 더욱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울타리를 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편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대로 움직일 자유를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소중한 의견이니 제의해보겠다고 말했는데 아저씨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왜 바로 적용하지 않느냐,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세금으로 사는 사람들이 그래도 되는 것이냐.” 당시 박근혜 정권 시절이었는데 정부처럼(?) 행동한다며 “너희들도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거냐, 너희들도 똑같다”며 막말을 퍼부었다. 이 부당한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아저씨는 떠나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3. 한 남자

야간 근무를 하면 조용한 날도 있지만, 소란스러운 날도 있다. 소란의 원인은 대개 취객일 때가 많다. 전철 운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오늘 하루는 안전히 끝났다’라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맞이방에서 고성이 들렸다. 나가보니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던 학생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역장님이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느냐”며 한 소리 했고 이에 더욱 격해진 그 아저씨는 자기 물건을 집어던지고 두고 보자며 선전포고를 날렸다. 던진 물건을 줍지도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우리가 수거했고 나중에 다시 돌아오면 주려고 보관했다. 물건 중에는 신분증도 있었는데 그 사람 이름이 노래 <한 남자>를 부른 근육 우락부락한 가수와 이름이 같았다. 그래서 ‘한 남자’라 별명을 붙이고 다가올 시비에 긴장하고 있었다.


이후로 약 한 달간 그 남자에게 시달렸다. 그의 복장 상태는 다양했는데 맨발로 다니기도 해 정체를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으며 시비를 걸었다. 역 관리 구역이 아닌 곳의 흡연장의 쓰레기통을 가져와 “왜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게 놔두느냐”라고 시비를 걸고 주변 시설을 파손하는 등 말썽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니 역무실에서 역장님을 ‘형님’이라 부르며 사람 좋게 굽신대는 그를 봤다. 갑자기 얌전해진 이유가 궁금해 역장님께 여쭤보니 시비 걸기 위해 역무실에 들어왔는데 그때 던졌던 물건들을 챙겨주는 역장님께 감격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던지고 떠났는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마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감사하다고 하고 떠난 그는 정말로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한 남자’였다. 이후로 단 한 번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가끔은 TV 시트콤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진다. 돌이켜 봤을 때야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넘치는 인맥을 자랑하기도 하고 보는 앞에서 욕을 하기도 하고 국민신문고를 비롯한 여기저기 민원을 넣어 버리기도 한다. 대부분 달래고 달래다 최후의 방법으로 경찰을 부르면 다들 얌전히 떠난다. 차마 이 글에 담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덕에 정신력이 튼튼해지고 응대 능력도 좋아지는 것 같아 고마울 때도 있다. 하지만 더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모든 역무원이기 전에 한 명의 부모이고,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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