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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Dec 01. 2021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 다양한 사람들 2

노동요 - 철도 인생

과거를 돌이켜보면 기분 좋은 회상이 있는 반면 하루의 감정과 일상을 뒤집어버릴 정도의 기분 나쁜 회상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떠올리지 않고 싶은데 머릿속에 너무 깊이 자리 잡아 내가 원하지 않아도 종종 떠오르는 업무 중 만난 사람들이 있다. 이 글은 시리즈의 두 번째이자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1. 내 돈 내놔

대중교통 환승은 출퇴근을 비롯한 이동을 하는 국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다. 이것 하나만 잘 지킨다면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바로 ‘잘 찍고 타서 잘 찍고 내리기’다.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승이 되지 않는다. 가끔 버스에서 잘 찍지 않고 내려서 지하철에서 찍어 돈이 한 번 더 나가는 경우가 있다. 드물지만 카드를 찍지 않고 지하철 게이트를 벗어나서 버스를 타서 카드를 찍어도 돈이 나간다.


역사 내 기계의 결함이 있어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잘못 찍었을 확률보다 낮다. 돈이 더 빠져나갔다면서 역무실에 찾아오면 결함이라고 확정하기 전 전산시스템과 기계를 통해 다 확인해본다.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 알려주기 위함이니 다짜고짜 화를 낼 필요는 없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 실수라고 시원하게 인정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내키지 않지만 설명을 받아들이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 실수임이 확실한데도 우기는 사람이 있다. 잘 설명해줘도 너희 잘못이라며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아줌마는 돈을 내놓으라고 하도 우겨서 내 돈을 준 적이 있다. 교대근무다 보니 내 근무 때 만나지 못했는데 자기가 그런 적이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다른 근무자에게 확인을 해보니 다짜고짜 돈을 내놓으라는 사기는 아니었다. 실랑이가 있긴 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든 돈을 주지 않거나 그냥 가져라 하고 악연을 끊어버리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당연히 규정을 따라야 하지만 인간의 융통성으로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돈은 회사 돈이 아닌 사비로 마련한다. 


전화로 억지 부리는 아줌마에게 직접 찾아와서 교통비 1,250원을 가져가라고 하니 자신은 갈 수 없으니 계좌이체를 하란다. 계좌 이체를 하고 자기 전화로 문자를 보내란다. 회사 전화에 문자 메시지 시스템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겠지만 그런 건 없다. 그래서 개인 핸드폰으로 문자까지 보내주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기분은 찝찝하나 이렇게라도 일을 마무리하니 속 편하다는 생각으로.


며칠 뒤 다시 그 아줌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항의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안녕하세요. 연락 주셨는데 못 받아서 드렸어요. 누구세요?”

“교통비 보내고 연락하라고 하셔서 보내드리고 연락드렸잖아요. 잘 받으셨어요?”

뚜. 뚜. 뚜. 

창피한지 바로 끊는 아줌마였다. 


본인 과실은 안타까운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동정심으로 그 과실을 메워줄 의무는 없다. 나는 카드를 당연히 찍었다고 생각하지만 판단은 기계가 한다. 기계에서 카드 찍을 때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이상 그건 찍은 게 아니다. 소리를 잘 확인해야 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카드를 잘 찍었는지 확인하고 내리자.


2. 뜨거운 사랑

젊은이들의 뜨거운 사랑은 밤낮이 없다. 더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가득하지만 대중교통의 마지막 운행이 이들의 통금시간과 일치해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져야 한다. 그래서 막차 시간에 번화가에는 유독 젊은이들의 애틋한 헤어짐이 많은 편이다. 


배웅을 하고 떠날 때 보통 게이트 앞에서 헤어지기 마련인데 한 남자가 여자 친구가 잘 타고 가는지 봐야겠다며 안으로 보내달라고 요구를 했다. 당연히 안 되는 일이다. 그 사람이 무임승차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승하차를 하지 않아도 용무가 있으면 카드를 찍고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 이용하지 않는다고 게이트 안을 이용하는 것이 공짜는 아니다.


그 남자는 카드를 찍고 들어가서 배웅하라고 말하니 돈이 아까운지 결국 밖에서 헤어지고 여자 친구를 멋지게 보내고 나서 엄청 시비를 걸었다.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들어가야 하냐, 돈은 얼마나 받고 일을 하냐 등 갑자기 취업을 향한 도전 의식이 생긴 걸까. 하지만 말투와 표정부터 그것은 열정이 아닌 시비였다.


계속 업무를 방해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고 전화에 신경 쓰는 그때 내게 욕을 하고 도망갔다.


여자 친구에게 한 없이 사랑을 표현하던 남자, 만약 여자 친구가 이 모습을 봤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정상적인 여자 친구라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3. 눈 까세요.

다짜고짜 성질을 내며 역무실로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옆에는 나이가 서넛 정도 되어 보이는 딸이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사회복무요원이 자기에게 욕을 했다는 것이다. 같이 있던 사회복무요원을 오랜 시간 봤기에 그럴 친구가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다. 정말로 욕을 했는지 물어보고 하지 않았다는 답을 받고 그 남자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 남자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좋게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자기가 사회복무요원과 한 번 싸워야겠다며 난리를 쳐서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요원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고 맞부딪쳤다. 진정하고 말을 하시라. 어린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으냐. 이제는 내게 맞짱을 까자며 시비를 걸었다. 공직자라서 그런 거라면 자기가 눈감아줄 테니 한 번 싸우자고. 그래서 정말 그래 준다면 싸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그때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 앞에서 자기 하소연을 쏟아내던 남자.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노려보며 한마디 말을 뱉었다. “눈 깔아.”


저게 미쳤나 싶어 나도 같이 노려봤다. 그때 경찰이 나를 말리면서 속삭였다. “그냥 눈 까세요.” 황당했다. 눈을 까라니. 우리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눈 까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하지만 여기서 폭발하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았다. 그래서 경찰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경찰의 중재 끝에 남자는 오해였음을 인정하고 딸과 함께 돌아갔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기 전 내게 미안하다며 악수를 청했다. 당시 나도 화가 많이 난 상태였기에 화해의 악수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한 번 더 참고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을 하라. 도와드리겠다.”는 말로 손을 잡았다. 


인류애가 사라진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지 못하고 부딪치면 그것은 내 책임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 자를 되뇌며 참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이 내 직장이 아닌 곳, 내가 손님이 아닌 곳에서 나는 왕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나도 상대도 왕이 아니라 다 같은 사람이다.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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