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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ug 18. 2021

(시기 불명) 대학 입시 정보 회사 자료 정리

노동요 - 아르바이트 후기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갑자기 삶을 돌아보다 보면 잊었던 기억도 되살아나는 때 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일했던 것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내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아르바이트가 있다. 너무 짧게 일해서 그랬던 것일까? 인상 깊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아마 2015년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을 것이다. 나는 대학 입시 정보 회사에서 자료 정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이유는 몰라도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았고, 취직하지 못해 집에서 눈칫밥을 배부르게 먹고 있던 시절이라 거리 상관없이 불러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그 회사는 일하던 사람이 빠져 후임자를 구하고 있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 때 ‘해커스 교육’ 신입 채용 시험과 면접을 본 적이 있었기에 교육 관련 회사의 건물에 대한 이미지(회사 자체가 아닌 건물에 대한 이미지만)가 내 머릿속에 나름 좋게 자리 잡혀있었다. 지저분함과 거리가 먼 깔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시 정보 회사라기에 사무실이 참 깨끗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무실을 찾았을 때 과연 이곳이 회사가 맞는지 혼란과 의구심이 들 정도로 지저분했다.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대접도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일했던 자리는 책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맞지 않는 책상과 책상 사이에 나무판자로 높이를 맞춰 누가 봐도 안 좋은 컴퓨터 한 대만 놓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도 한가운데. 마치 파놉티콘 같았다. 둥글게 둘러싸인 직원 책상 사이에 내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책상 아니 판자가 너무 낮아 VDT 증후군 발병은 물론 거북목이 될 것만 같은 자리에서 내가 했던 일은 대학교 학사 정보와 입학전형 정보 정리였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 들어본 것보다 들어보지 못한 게 더 많은 그 대학들이 엑셀 파일에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게 할당된 대학의 입학 정보와 학사정보를 잘 정리해 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요즘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수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학년 게시판에 대학 점수표가 있었다. 이 정도 점수면 어느 학교 어느 과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다 담아낸 커다란 도표였는데 이 회사 같은 교육 회사에서 그런 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무실 한편에 있는 연, 월 일정표를 보니 연초와 수시, 수능 때가 되면 대학별로 각종 정보를 모아 놓은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했고 다른 때는 이를 가지고 학부모를 상대로 설명회를 하는 것이 이 회사의 주된 업무였다.


대학교 홍보 자료가 직원들 책상마다 잔뜩 쌓여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건조함과 케케묵은 먼지의 답답함 때문에 사람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남자는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가끔 일을 빨리 안 한다며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책으로 뒤덮여 사무실이 좁았던 건지 원래 좁았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직원끼리 자리가 너무 붙어 있었기에 그 싫은 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게 아니라 바로 앞에서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인상 찌푸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누구 하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괜히 내게 불똥 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에 눈치를 보며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식대가 없다는 것. 돈도 최저시급으로 주면서 직접 돈을 주고 밥을 사 먹어야 했다. 지역이 회사로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에 밥값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비쌌다. 집에서 거리도 멀어 차비도 많이 들었기에 차비와 식비를 고려하면 일해도 남는 게 없었다. 이곳 직원들도 밥이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함바 식당 같은 곳의 식권을 끊어 다녔는데 가격은 저렴했지만 저렴한 만큼 맛이 너무 없었다. 그래도 돈을 아끼기 위해 참았다.


주어진 리스트에 있는 대학의 각종 정보가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으면 정리가 편하지만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대학이 아닌 곳은 천천히 정보를 갱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보가 없는 대학교는 직접 입학처나 관련 부서에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 했다. 그때 받았던 팁은 내가 교육 회사 직원인 것을 알리거나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학교 정보로 영리 사업을 한다는 것에 불편한 것인지 잘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학부모인 척하거나 진짜 학생인 척을 하라는 것이었다. 대충 얼버무리며 정보를 얻었다.


일하는 분위기도 좋지 않아 ‘이곳 참 별로다’라는 생각이 커질 무렵 일을 생각보다 빨리해서 그런지 몰라도 직급 높아 보이는 남자가 사직 권고를 간접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나 말고 같은 일을 하던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두 명은 너무 많지 않은 것 아니냐는 둥 기분 나쁜 소리를 좁은 사무실에서 거의 앞에 하는 것이었다. 왠지 한 명이 잘릴 것 같은데 나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 같이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이 밥 먹을 때마다 아르바이트가 구하기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았기에 내가 마지못해 양보해서 잘리거나 늦게 들어왔으니 숙련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잘리거나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회라 생각하고 집도 멀고 다른 일을 구했다고 얘기하고 계약 기간보다 빨리 일을 관뒀다. 일주일 정도 일했을 것이다. 이후 바로 일을 구하길 바랐으나 일을 못 구하는 바람에 괜히 사직을 자원했나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아마 더 오래 일했다면 기관지가 안 좋아지거나 화병이 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일을 하며 좋았던 점을 꼽자면 고등학교 입시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는 것. 안 좋은 점은 사내 분위기와 복지. 역시 회사는 마음 편히 일할 맛이 나야 하는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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