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변화는 아닐지라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교대할 때가 되면 마음이 풀어진다. 주말 근무라면 더욱더 그렇다. 평일과는 달리 주말, 특히 일요일 오전에는 사람 수가 적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집에 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역장님은 청소도구를 들고 밖에 나가 광장을 청소하셨다.
우리가 먼저 나서야 주변이 바뀐다는 말씀에 의구심이 생겼다. 실제로도 쓰레기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드는 모습은 볼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역장님은 광장 청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셨다.
그다음 주 일요일에도 역장님은 광장을 청소하셨다. 역장님의 관심 덕분이었을까? 광장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점점 줄었고 역장님이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줄었다. 광장이 지난번보다 버려진 쓰레기가 줄고 더 깨끗해졌다고 만족해하시는 모습에 내가 괜히 뿌듯했다.
<솔로이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영화를 찾아보다 만난 영화다. 군대 후반기 교육에서 본 <모범 시민>이라는 영화에 나온 제이미 폭스도 주연을 맡았기에 그 두 명의 주연 영화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영화 자체보다는 지금 나의 상황과 겹치는 것 같다는 생각만 하긴 했지만 말이다. 일개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기대만큼 재미는 없었으니까.
만약 길을 가다 지저분한 옷을 입고 두 줄만 남은 고물 바이올린을 켜는 노숙자를 만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누구라도 피하겠지만 영화 속 기자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나다니엘 에어스(제이미 폭스)를 피하지 않았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나다니엘을 본 스티브는 그의 이야기를 기사를 쓰기로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시답잖은 존재일 수 있는 나다니엘에게 스티브는 꾸준한 관심을 보인다. 나다니엘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연주라도 음악이 세상의 모든 소음을 잠재운다는 믿음. 그 믿음을 보여주는 나다니엘은 기자로서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스티브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존재였다.
이쯤이면 나다니엘은 스티브의 도움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해 부귀영화를 누리며 영화가 끝날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 그런 엄청난 변화는 없다. 하지만 스티브의 기사를 읽은 노인이 자신이 쓰던 첼로를 나다니엘에게 선물하고 시장은 노숙자를 위해 재정지원을 늘리고, 노숙자로 가득한 거리를 정비하는 등 영화 속 동네에는 조그마한 변화가 생긴다.
역장님의 행동을 보고, 영화 <솔로이스트>를 보며 ‘시나브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변화라는 것이 대개 그런 것 같다. 갑작스러운 변화도 있겠지만 물감이 천천히 번지듯 서서히 일어나는 것. 우리 주변은 시나브로 변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고. 지금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지라도 꾸준히 관심을 보인다면 언젠가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영화 속 나다니엘과 스티브, 그리고 역장님의 관심이 주변을 변화시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