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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18. 2023

우리 음악의 맛

한국 음악에 배태되어 있는 비트닉

대중음악은 무엇일까?

음악은 인간이 세상에서 발견한 최초의 유희 중 하나다. 이 유희는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자신만의 것, 소리만으로 만들어 내고 즐길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인간은 이 간단한 유희를 발전시켜 음을 만들고,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를 통해 인간은 자기 생각을 대변했으며, 무언가를 주제로 놓고 표현했다. 음악은 유희에서 예술로 발전했고 다양한 종류로 세분화되었다.


인간은 각자 종류마다 선호하는 음악이 다르며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음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음악도 있다. 대중음악1)이란 널리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악을 뜻한다.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의 장르는 시대와 장소(국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 또한 유행하고, 사람들이 즐기던 음악의 장르가 시대마다 달랐다.


우리나라의 음악

우리나라의 음악은 정서를 표현하는 음악이 대체로 많다. 우리나라에는 ‘한’이라는 정서가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한’은 어느 곳에나 숨어 있다. 아주 오래전 시작된 민요부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한’이라는 정서는 사라지지 않고 음악을 통해서 꾸준히 표현되었다. ‘한’에 대해서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한’이 숨어있고, 부모님에 대한 불효에 대한 후회에도 ‘한’이 숨어있다. 성취에 대한 아쉬움으로 그 뜻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추구하고 열망하는 뜻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고난의 세월을 수없이 겪어온 국가다. 외세의 압박을 견뎠고, 국내에서의 압박을 견뎠다. 고난의 세월 속에서 우리나라가 고통을 이기도록 도와준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했고, 희망을 품고 고난을 버티고 이겨내었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사에는 기존에 있는 사상이나 배경, 상황에 대해 저항하는 정신을 표출하는 음악이 시대마다 존재한다. 이 저항의 정신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며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문화사회학적으로 반문화, 하위문화적인 정신의 상징을 히피의 전신인 비트닉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중음악에는 비트닉의 정신과 문화가 배태되어있다.


배태의 사전적인 개념은 ‘뿌리를 내림’, ‘제대로 자리 잡게 됨’이라고 한다. 경제사회학적으로 그라노베터는 배태에 대해서 ‘경제 행위는 원자화된 행위 주체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현재 맺고 있는 인적 관계의 연결망에 배태된 것이다. 여기서 연결망이란 개인 혹은 집단 간의 일련의 정규적인 접촉이나 사회적 연계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연결망 속에서 한 개인의 행위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배태된 것이다.’2)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의 흐름에 따라 비트닉의 문화와 정신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배태되어 있고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비트닉이란 무엇인가

비트닉 하면 떠오르는 것은 자유, 저항이다. 비트닉은 기존의 문화에 대해서 벗어나고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비트닉을 알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출현한 세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은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민속 음악을 즐기며 산업화 이전 시대의 전원생활, 인간 정신에 대한 신뢰,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20년대의 '상실 세대(Lost Generation)'처럼 기성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하였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힙스터(Hipsters)'로서, 혁명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비트닉(Beatniks)'으로서, 방랑자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기성 사회를 떠나 시를 쓰고,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동방의 선불교에 빠진 사람들을 칭한 것이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어떻게든 쉬지 않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랑자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획일성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책임으로부터 도피해 보려고 하였다. 그들은 기성 사회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3)


이분법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비트닉을 기존의 문화와 다른 문화라고 여긴다면 비트닉은 하위문화적이고 반문화적인 형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하위문화는 부분 문화라고도 한다. 어떤 사회의 지배적 문화에 대해 그 사회의 일부 집단에 공통하는 특유의 가치 기준에 의해 형성된 문화를 말한다.4) 이러한 집단은 특정의 계층, 세대, 직업이나 종교, 인종, 지역을 기초로 구축되고 계승된다. 독자의 생활양식, 행동 양식을 가지고 그것을 정치적 가치관과 결부시킴으로써 대항문화가 되어 정치 운동으로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인종, 종교, 지역을 기초로 한 하위문화는 사회화를 통하여 계승된다.


반문화는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하위문화를 뜻한다.5) 어떤 집단의 문화가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크게 대립할 때 이 문화를 일반적인 하위문화와 구분하기 위하여 J.M. 잉거가 도입한 개념이다. 반문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부분 집단을 형성하고 전통적인 기성 문화에 도전한 1960년대 미국의 히피 같은 하위문화를 들 수 있다. 그밖에 비행 청소년 집단, 과격한 여성해방운동가의 모임, 종교적인 급진적 종파 운동, 동성애의 자유화 운동자 집단 등이 반문화의 예가 될 수 있다.


반문화를 때로는 대항문화라고도 하는데, 지배문화에 대립한다는 의미에서는 반문화나 대항문화 어느 것이든 별 차이가 없겠으나, 지배적인 문화에 대한 입장을 기준으로 이들 개념을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먼저 반문화는 그 대표적인 예로 범죄 문화를 들 수 있다. 범죄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지배문화를 공유하고는 있으나, 반문화를 형성하여 지배문화를 파괴하고 이용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60년대에 미국 ·유럽을 휩쓸었던 청년문화는 기성 문화, 즉 이들 지역의 지배문화에 대한 공공연한 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의 목표는 지배문화를 파괴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새로운 질서에 의한 대치였다. 이를 부정적인 의미를 강하게 풍기는 반문화와 구별하여 대항문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반문화나 대항문화는 모두 넓은 뜻의 하위문화에 속한다고 하겠다. 반문화(대항문화)에 있어서 대항 운동은 3가지 형태를 가진다. 즉,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직접적인 대립, 권력 구조에 대한 대립, 그리고 지배적인 가치와 얽혀 있는 유형화된 교환에 대한 대립 등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시초 – 시조와 민요

민요란 민중 속에 전승되어 온 가요를 뜻한다. 민속 음악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며, 일반적으로는 예술 음악과 대립하는 말이지만, 반면 예술 음악의 모체가 되기도 한다.6) 조선 시대를 포함한 과거의 시대에는 음악을 예술 형태로 표현하는 경우보다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는 소리에서 가사를 붙이고, 또 그 노래가 입을 통해 전달되고 익숙해짐에 따라 일을 할 때 불렀다. 또는 시에 음을 붙여 부르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민요는 여러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대부분 일(노동)을 하면서 ‘영차’ 같은 기합, 추임새가 중심이며 이 소리를 바탕으로 가사가 만들어져 음악이 만들어졌다. 장사를 치를 때에도 ‘어허이 달공’ 같은 추임새를 가사 속에 투입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음도 가사도 그때마다 새롭게 변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곡가나 작사가를 특별히 구분할 수 없다.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하고, 때로는 국민성과 민족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민요는 유행가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어버이에게서 자식으로, 자식에게서 손자로 전승된다. 그 전승도 문자나 악보를 매체로 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필요에 따라서는 춤과 함께 집단적으로 부르기 때문에 가사와 곡조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7)


앞서 설명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은 ‘한’이라는 정서를 표현하는 내용이 많다. ‘한’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여러 감정과 생각들은 기본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된다. 추구의 결과는 그것이 실패하거나, 또는 바람으로 끝나거나 동일하지 않지만, 추구, 성취에 대한 느낌은 기존의 것에 대한 저항의 모습을 띠고 있다.


또한 자연 속에서 문화를 즐기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무위자연, 물아일체, 안빈낙도의 모습을 표현하는 시가들이 조선 시대에 유행했는데 ‘강호사시가’, ‘상춘곡’, ‘어부사시가’와 같은 시가들이 대표적이다.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즐기고 여유를 즐기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조선 시대의 양반이라면 당연히 벼슬살이를 하며 나랏일을 도맡아야 하지만, 이런 세상(정치)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세상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정치적인 측면 외에도 학문적·종교적인 면이 개입되어 있는데 도가 사상의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도가의 도덕은 인위 조작하지 않으면서도 어김없이 전개되는 무위자연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에 따라 인생론에서도 무욕과 허무의 방법 등 부정적 방법을 통하여 자연대도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였다.8) 기존의 답답한 생활 속에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글로써, 노래로써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의 히피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히피족은 1960년대 미국의 물질문명에 항거했던 젊은이들의 그룹으로 더벅머리와 맨발에 옷을 아무렇게나 입으며,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개방적인 성관계를 가지는 등 미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인 이방인들이다.9)


비트닉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정립된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달된 시기를 1960~70년대 사이로 간주할 수 있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비트닉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대별로 알아보는 비트닉이 배태된 한국 대중음악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시대별로 비트닉이 배태된 모습을 설명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비트닉의 모습을 잘 드러난 시대가 일제강점기, 민주화 시대, 현대(90년대)다. 이 세 가지를 토대로 한국 대중음악을 설명하고자 한다.


1.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식민지 생활을 하던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정서는 대부분이 슬픔이었다. 가사 속에는 민족의 애환이 나타나고 있으며 식민지와 근대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대중들에게 음악으로 위로하였다. 근대화 과정 가운데 익숙하지 않은 음악의 장르들이 많이 유입되었는데 트로트, 재즈 같은 음악은 국민에게 최신 문화였지만 이 음악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의 유형은 하위문화적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가요는 식민지라는 상황에 허무와 눈물로 일관된 작품들이 많았다. 가장 많은 것이 님과의 이별이었다. 님의 상실은 고향 상실과 이산의 아픔을 동반하며 ‘님’은 ‘봄’과 함께 광복을 상징하는 중의적 성격도 띠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는 이러한 시대 인식을 통해 소극적이나마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유랑민들의 삶을 통하여 조국 상실의 아픔을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가요 시는 당시 대중들의 삶과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눈물의 정화를 통해 민족의 삶을 위로하는 현실감 있는 언어가 되었다.


일제는 감상적인 유행가를 금지하고 승전의 노래인 ‘국민가요’를 보급했다. 민족의식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봉선화」, 「눈물 젖은 두만강」, 「낙화삼천」,「꿈꾸는 백마강」등의 노래는 발매 금지 처분을 당했다.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는 정제되고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격을 유지하여 왔으며 당시 사회상을 짙게 반영하여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는 일본 가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왜색이라 폄하되기도 하였다.10)


우리나라는 일제라는 권력 구조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음악이라는 문화를 통해서 저항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제 역시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화를 먼저 끊어야 우리나라를 완전히 식민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제재를 가했다. 단순한 유희에서 벗어나 저항의 정신과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중음악을 통해 드러남으로써 비트닉의 문화가 배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 민주화 시대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시대를 겪었다. 수많은 정치적 독재에 대해 투쟁하고 또 투쟁했다.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독재 정권에 대항하고, 노동권과 관련된 내용의 음악이 대중 앞에 등장했다. 1960년대 말 미국의 대중문화 및 히피 문화가 동시에 유입되면서 음악 장르가 풍부해지고 표현하는 내용 또한 다양해졌다. 포크송과 같은 과격하지 않고 잔잔한 음악이 유행했다.


당시 유행했던 음악 중 하나가 민중가요다. 민중가요란, 민중이 한마음, 한 뜻으로 즐겨 부를 수 있도록 작사, 작곡된 노래를 뜻한다.11) 대중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저항적 성격을 표현하는 데에는 적격이었다. 민중가요는 주로 사회운동에서 불리는 노래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투쟁가, 민가 등으로도 불린다. 노동운동, 통일운동, 인권운동, 정치 운동 등 주제별로 다양하다. 미국의 히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자유를 추구하고 저항적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민중가요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해당 운동의 주제를 주로 담았다. 6월 항쟁 이후에는 많은 대학교에 민중가요 노래패(동아리)가 창설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기간에는 철의 노동자와 같은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민중가요가 많이 불렸다.12)


미국의 밥 딜런의 영향을 받아 잔잔하지만 깊은 표현을 담은 노래들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안치환’, ‘김광석’ 등 많은 가수가 민중가요 성격의 음악을 많이 표현했다. 이들은 거대한 권력 구조에 폭력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예술이라는 다른 방법으로 저항하는 것을 선택했다.


저항적 성격의 음악은 독재 정권에 의해 많이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 음악적 탄압이 심해지다 보니 저항적 성격의 내용을 표현하려 하지 않은 이들의 음악도 많이 금지곡 처분을 받는 경우가 생겼는데, ‘양희은’이나 ‘산울림’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70년대 초 유신정권 이후 대중음악은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음악과 더불어 사람들의 외모 등에도 통제가 심했다. 머리가 장발이면 잘리고 미니스커트 길이 단속 같은 복장에도 제재가 있었다. 이런 통제적인 상황에 대해 저항하는 음악이 대중 사이에서 유행했다. 민중가요가 정치에 대한 저항으로 국가, 사회에 집적적이고 적극적인 저항을 나타냈다면, 문화적 자유를 추구하는(표현은 민중가요보다 덜 직접적인) 록 장르는 그보다는 소극적 저항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민중가요는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가사와 멜로디를 지향했지만 록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히피 문화가 유행한 미국 같은 경우에는 비틀스 같은 록 밴드들이 미국의 당시 상황(베트남 전쟁 반대, 흑인 같은 인종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노래를 통해 저항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히피 문화, 반문화적인 성격을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록은 미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정치적 입장보다는 문화적 자유 추구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록 음악의 빠르고 강한 비트는 기존의 음악에서는 표현되지 않았던 모습이었고, 화려한 무대매너는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원동력이었다. 기존 사회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표현할 수 없게 사회가 선을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음악은 감상하기 편한 정적이고, 잔잔한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록 음악은 선을 뛰어넘고, 선을 그은 주체에게 저항하는 시위를 하며, 기존의 보수적이고 보편적인 음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습을 통해서 반문화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시나위’, ‘백두산’ 같은 록 밴드는 시대가 원하지 않는 모습(장발)을 하고 음악(권력의 입장에서 소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을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정치, 문화의 과도기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것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에 대해 저항하는 기질을 갖고 있었다. 60~80년대까지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났으며 이는 비트닉의 문화가 잘 표현되었고, 우리나라 음악에 배태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3. 현대(90년대)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자유로워지면서, 표현에 있어서 자유가 생기고, 표현에 자유에 대한 반응 역시 과거보다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과거에는 저항의 의도도 없는데 제재받는 경우도 있었고(산울림), 비유 등을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반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제와 탄압의 시절을 겪던 젊은이들이 90년대가 되면서 기성세대가 되기 시작했고 젊은 시절에 아무리 권력 구조에 저항하는 문화를 수용했다 하더라도, 자신들 스스로가 과거의 권력 구조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표현의 자유에 따라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게 되는데, 한국 대중음악에 큰 변화를 준 이는 서태지라고 할 수 있겠다. 서태지는 록 밴드 ‘시나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록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본인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항의 정신이 음악에 담겨 있다.


저항 정신을 표현하던 록 음악은 다시 90년대가 되자 주춤했다. 대중성을 가미하고 상업적인 록이 등장했으며, 발라드 같은 잔잔한 음악이 다시 성행함에 따라 록의 인기는 점점 떨어졌다.


서태지는 이런 문화에 저항한 새로운 느낌의 비트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댄스와 록, 힙합이 가미된 음악을 등장시켰고, 기성세대에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해도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정신이 있기 마련이다. 서태지의 음악의 장르는 기존의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음악계에서 하위문화라고 할 수 있는 힙합, 댄스, 록을 이용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 또한 하위문화적이고 반문화적이다.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 그의 음악에는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포함하고 있다. 기존의 문화구조에 음악을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저항하는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그 저항의 성격은 투박한 과거의 저항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다.


기성세대에게는 거부감이 드는 음악이었을지 모르나 서태지의 음악은 그의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와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영향받는 신세대로 세대를 분류했다.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공감하고, 표현에 동의하였으며, 새로운 문화를 구성하고 발전시켰다. 서태지 음악의 기초는 외국의 영향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서태지는 한국 대중음악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다. 서태지는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새로운 문화를 구성했고 그 문화를 주도했다. 비트닉의 영향을 받았지만 새로운 한국 스타일의 비트닉으로 재창조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한국 음악 속 비트닉 정신과 문화적 가치

문화는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고, 발전한다.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발전하려면 기존의 것에 대한 저항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였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었다. 비트닉이라는 문화 현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트닉이라는 문화 현상에 대해서 개념이 정립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을 뿐이지 인간의 삶 자체에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는 힘이 존재함과 동시에 하위문화, 반문화적 기질이 있다. 비트닉은 한국 문화에 배태되어 있었다.


비트닉은 단순히 저항하고 방랑하며, 기존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접근이면서, 기존의 문화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무엇이든 절대적인 것은 없다. 기존의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고집하는 순간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른 변화나 저항적 모습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비트닉은 설명하고 있다. 음악이라는 분야를 통해 비트닉의 정신과 문화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인식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격동적인 세월을 100년 이내로 보냈다. 비트닉의 정신은 우리나라가 정치적, 문화적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트닉의 문화가 정답인지, 비트닉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때에 생기는 악영향에 대해 비트닉 자체가 대안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존의 획일성 짙은 문화에서 탈피하고 여러 방향성을 제시하는 비트닉의 정신과 문화는 가치가 있지 않을까.



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5318&mobile&categoryId=1636

2) 유홍준, 정태인, 신경제사회학, 성균관대 출판부, 2011, p130

3) http://ko.wikipedia.org/wiki/%EB%B9%84%ED%8A%B8_%EC%A0%9C%EB%84%88%EB%A0%88%EC%9D%B4%EC%85%98

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7788&mobile&categoryId=485

5) http://100.naver.com/100.nhn?docid=70439

6) http://100.naver.com/100.nhn?docid=67756

7) http://100.naver.com/100.nhn?docid=67756

8) http://100.naver.com/100.nhn?docid=47413

9) http://hyderay.blog.me/150003234074

10) http://seeingwangjang.com/60098547255

11)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4927900

12) http://ko.wikipedia.org/wiki/%EB%AF%BC%EC%A4%91%EA%B0%80%EC%9A%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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