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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r 22. 2022

했다면 시리즈

마블의 콘텐츠 <What if>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내용을 만약의 상황으로 바꿨을 때를 상상해 만든 이야기다. 1화를 예를 들어보면 캡틴 아메리카의 역할을 스티브 로저스가 아닌 페기 카터가 맡았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로 봤던 내용과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미 지난 이야기라 바꿀 수 없지만(요즘 마블이 계속 밀고 있는 ‘멀티버스’라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가정과 상상 속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콘텐츠의 묘미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했다. 항상 선택은 신중을 필요로 한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엎어진 물을 어떻게든 담아 다시 원상태로 돌리기도 하지만 그건 어쩌다 있는 경우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오차가 있기 마련이다. 대개 내 선택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결과와 상관없이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후회가 있기 마련이다. 최고의 선택으로 최상의 결과를 얻어낸다면 후회가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시간을 돌릴 수 없기에 실제로도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자다 이불을 걷어차기도 하고 후회하는 일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다른 결과를 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글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많았다는 것을 남기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남기는 이유는 모든 후회가 잘못에서 벌어진 실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계속 머리로 되뇔 거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앞으로는 더욱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시기를 적당히 나눠 조금만.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기생충>에 대해 한 줄 평했던 것처럼 그때 그 이야기를 ‘명징(明徵)’하게 ‘직조(織造)’해보고자 한다.


1. 유년기 - 지우개를 집에 가져오지 않았다면

나는 6살부터 유치원을 다녔다. 하지만 유치원이 운영을 중단하면서 7살이 되어서는 집 앞 미술학원에 다녔다. 이름만 미술학원이지 유치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이곳은 아이들 학습을 위해 필기구가 많았고 지우개도 많이 있었다.


바구니에 있던 지우개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으면 되는데 나는 하나씩 집에 가지고 왔다. 도둑질한 것이다.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버려진 걸로 생각했다. 하나씩 가져온 지우개 5~6개가 책상에 쌓였고 가져와서 한 것은 블록 쌓듯 가지고 논 것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누나가 책상에 지우개가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지우개가 너무 많다고 고자질했고 나는 순수하게 그냥 떨어진 것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먼지 나게 맞았다.


어쩌면 심한 체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도둑질에 대해 확실히 경각심을 얻었으니 최고의 훈육이었다고 본다. 지우개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맞는 일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아직 남은 후유증이 있다면 나는 아직도 엄마가 나 때문이 아니라 구내염 때문에 입이 아파 ‘씁’ 소리를 내면 움찔한다는 것이다.


2. 초등학생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면

5학년 겨울에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누워있는 아빠를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리고 불편했다.


추운 겨울 엄마와 누나만 저녁마다 병상에 있는 아빠를 보러 병원에 갔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아빠는 날 찾았다고 한다. 나는 다음날 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빠는 있을 테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다음 날도 같은 하루가 이어질 것이라는 안일함이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마자 우리 집은 분주해졌다. 아빠가 위독하다는 병원의 연락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눈 감을 것 같은 아빠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 같은데 하지 못했다. 복도에서 순천에 있는 친척들을 기다렸다.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눈이 많이 오는 그날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늘 힘없던 아빠는 나를 찾았던 그날만큼은 유독 건강했다고 한다. 아마 회광반조(回光返照)의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봤다면, 실없는 이야기라도 직접 나눴다면 지금까지 남아있는 죄송함과 후회가 덜하지 않았을까.


3. , 고등학생 제대로, 열심히 공부했다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고 자랑할 만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게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수능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 졸였던 고3 시절을 제외하면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만족하고 안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공부를 제대로, 열심히 했다면 어땠을까.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는 것은 수재에 해당하는 일이다. 교과서만으로 공부하더라도 응용력과 이해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곧이곧대로 보는 데 그쳤기에 전혀 효율적인 공부를 하지 못했다. 학원에 다녔다면 부족한 부분을 조금은 보완하지 않았을까.


학원에 다니지 않았던 이유는 오만함에서 나오는 안주와 경제적인 부담감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만 해도 결과가 괜찮았고 썩 좋지 않은 집안 형편에 학원비가 부담스러웠다. 조금만 내 욕심을 부렸다면 다른 결과를 보지 않았을까. 그보다 공부하는 법을 익혀 다른 공부하는 데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과외 같은 일도 해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


4. 대학생 적극적으로 살았다면

내 대학 생활은 참 재미없고 모자랐다. 요즘 말하는 ‘아싸’(아웃사이더)가 나였다. 대학 합격의 순간은 정말 짜릿했다. 내 대학 생활도 활동적일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첫 단추를 잘못 맞췄다고 생각한다. 그 여파는 너무나 강했다.


입학 전 OT를 가려고 했지만 내야 했던 10만 원 비용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갔다고 많은 이와 사귀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얼굴은 익혔을 것이다. 수강 신청부터 학교생활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까지 얻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학기 시작하자마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붙임성이 좋았다면 먼저 다가갔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이후 MT 같은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수많은 학부생 사이에 아는 이가 없었으니 학교생활이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긴 했지만, 더 다양한 활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왕복 총 4시간의 등굣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이른 시간 집을 나서기 바빴고 수업을 마치면 집에 가기 바빴다. 학회, 대외활동, 문화생활. 대학 생활 막바지에 조금 기웃거렸지만, 남들이 밟고 있는 과정과 단계와 달리 뒤처져 있었다. 사람마다 출발선과 진행선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자취도 하고 싶었다. 경제적 부담감에 포기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공부도 못하는데 학업과 병행하기는 부담스러웠다. 지금 보면 변명에 불과하다. 20대의 젊음을 열정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겁이 많았고 의지가 약했다.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해봤다면 더 재미있고 알찬 20대를 보내지 않았을까. 내 부족한 적극성이 낳은 결과는 계속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후회를 비롯한 과거 회상이 과거를 바꾸지는 못한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임 스톤을 써서 과거를 회귀한다면, <백 투 더 퓨처>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일을 바꾼다면. 신나는 상상이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과거는 기록이 있든 없든 내 역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교훈 삼아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하나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더 많은 후회를 남기며 살아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도 대형 화재보다 모닥불, 성냥불 크기의 불을 보는 것이 안전하고 속 편할듯하니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게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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