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만난 누군가의 일기를 보며
브이로그는 ‘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말한다. 이런 브이로그는 내게 일기를 영상으로 써 내려간 것과 다름없었다. 일기를 본다는 것은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 같이 느껴져 브이로그를 보는 것도 조금 민망한 일이었다. 또 내용이 대부분 단순한 일상이기에 내게 별로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브이로그를 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왜 추천 영상으로 선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유튜브 최상단에 누군가의 브이로그가 있어서 한번 보게 되었다. ‘잘못된 콘텐츠는 없다’는 김태호 PD의 말을 떠올리며 거부감이 들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보고 나니 의외로 재미있었다. 그래서 다른 영상도 몇 편 찾아보게 되었다. 모두 배꼽 잡는 웃음 포인트는 없지만 미소 짓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별다를 게 없어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 삶과 미세한 차이가 있다면 더욱 흥미가 생긴다. 일종의 브이로그라 할 수 있는 관찰 예능이 잘 나가는 이유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사람 사는 이야기가 녹아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특별한 내용이 있는 브이로그는 별로 없다. 대부분 시시콜콜하다. 간단한 식사부터 여행 등 여러 소소한 일들이 영상에 담겨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신기하게 내게 반성의 기능으로 작용했다. 영상에서 날짜가 나오는 것을 보며 그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했다. 나 역시 특별한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단순히 살았다. 하지만 그게 의미 없는 하루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람 없이 소모한 것은 아닐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또 어쩌면 내게 허튼일이었던 일이 남에게는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알고 있음에도 쉽게 잊어버리는 일들이 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브이로그를 보며 내가 중심이라고 여겼던 세상이 점점 커져 모두의 세상이 되고 나만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모두가 다르기에 모두가 특별한 존재다. 그들의 삶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 방식의 삶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하나의 방식일 뿐인 것이다. 시답잖게 여겼던 브이로그를 보며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더욱 깊이 배운다. 내 시야가 넓어지는 것. 브이로그의 순기능이 아닐까.
기록물은 온전히 지워지지 않는 이상 어떤 경로와 방법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을 주고 참고서가 되기도 한다. 사소하고 사적이었던 기록이 중요한 사료가 되듯 말이다. 누군가의 사소했던 브이로그도 그런 역할을 하는 일이 있을 거라는 상상과 기대를 해본다. 브이로거들은 나중에 자신의 흑역사라 생각하지 말고 내 역사의 기록이자 시대를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한다고 과대한 뽕을 본인에게 넣어 자부심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