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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y 09. 2022

엄마와 율무차

날이 쌀쌀한데 배도 조금 출출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율무차였다. 따뜻한 온기에 적당한 포만감을 주는 율무차는 향도 고소해 차를 즐기지 않는 나도 종종 마신다. 율무차는 맛만 즐기기보다는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특별하다. 나는 율무차를 마실 때마다 엄마가 생각난다.


나이 네댓 정도 됐을 무렵, 한 달에 한 번 정도 엄마를 따라 은행에 간 적이 있다. 집 주변은 항상 공사 중이었다. 항상 뭔가 열심히 짓는 중장비 소리에 머리가 아파 칭얼대곤 했다. 당연히 동네에 은행은 찾아볼 수 없었고 엄마는 금융 업무를 위해 멀리 있는 ‘주택은행’에 가야 했다. 엄마는 혼자 갔더라면 더 빠르고 편히 다녔겠지만 어린 자식을 두고 갈 수 없어 영문도 모르는 아이를 끌고 함께 가야 했다. 버스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는 어린 내게 너무나 지루하고 긴 거리였다.


은행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북적였다. 번호표를 뽑고 빈 소파를 겨우 찾아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었다. TV도 없고 동화책도 없는 곳에서 지친 아이를 달래겠다고 엄마가 해준 것은 100원짜리 자판기 율무차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갓 나와 따뜻한 율무차가 담긴 종이컵을 붙잡고 홀짝거렸을 때 멈춰 있던 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지친 마음도 서서히 풀렸다.


번호표에 적힌 번호가 은행 창구에 보였을 때 엄마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내 옆을 떠났다.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인지 진한 율무차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인지 항상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아이는 “네”하고 자리를 지켰다. 차를 다 마셨을 때 컵에 걸쭉하게 눌어붙은 율무차 찌꺼기를 먹고 있을 때쯤 엄마가 돌아왔다. 고역이었던 기다림의 시간이 드디어 끝나는 것이었다.


그 후 삼십 년이 지났다. 회사든 집이든 가끔 찬장에 모여 있는 믹스커피보다 율무차 스틱에 손이 간다. 지금도 나는 율무차를 볼 때면 엄마와 은행에 갔던 때를 떠올린다. 율무차 원재료의 차이일까, 물과 가루가 섞이는 비율을 비롯한 율무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달랐기 때문일까. 어떤 율무차도 그때 그 율무차의 맛이 나지 않았다. 그때 그 율무차에는 엄마를 기다렸던 일들이 엮여있었기 때문일까. 


성인이 된 나는 항상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엄마를 항상 생각하던 어릴 때와 달리 지금의 삶에 엄마는 없다. 내 앞에 놓인 일을 풀어가는 데도 바쁘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항상 기다린다. 집을 나서 돌아올 때까지 안전을 바라고 늦지 않게 오기를 바란다. 나는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엄마는 힘든 내색도 없다. 어떤 장치가 하나 없어도 말이다.


조용히 엄마를 바라본다. 기다리라던 소리가 괜히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시간은 항상 넘쳐흐르는 것 같지만 빠르게 흐르고 주어진 양도 사람마다 다르다. 언제나 기다리라고 하고 달려올 것 같은 사람이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가슴이 아린다. 기다림은 그리움이 되고 사람은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점점 흐려질 텐데 나는 내 남은 삶의 시간 동안 붙잡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꾸준히 율무차를 마시려 한다. 맛은 달라도 항상 달려오던 엄마를 계속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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