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스쳐 간 사람 중 선수를 하던 사람들이 꽤 있다. 중학교에서 운동선수로 활동한 친구들, 상무에 입대하기 위해 군대 훈련소에서 만난 근대 5종 선수와 하키 선수, 자대에서 만났던 프로게이머. 그리고 역무원 생활 중 만난 볼링 선수, 야구 선수, 아이스하키 선수 등 각종 선수 출신 사회복무요원 등. 지금은 무슨 일은 하는지, 그대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중 선수로서 가장 잘된 사람을 떠올려본다면 프로야구팀 KT 위즈의 투수 박시영 선수가 있다.
박시영 선수는 내 중학교 동창이다. 하지만 같은 반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딱히 친하게 지낼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짧고 얇은 연을 소심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박시영 선수는 나를 모를 것이다. 나도 그의 학교생활은 잘 모르지만, 교복 입은 학생보다 수가 당연히 적었던 야구 유니폼을 입은 학생 중 하나였기에 그때 얼굴은 기억난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운동부가 꽤 많은 학교였다. 복싱, 씨름, 야구 등 운동부 소속 학생들은 오전 수업만 받고 오후는 훈련 참가로 수업을 빠졌다. 가끔은 대회에 나가 한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는 날도 많았다. 훈련이 고됐는지 수업 시간에는 대부분 엎드려 잤고 선생님들도 그런 모습을 혼내는 일이 없었다. 이 학생들은 체구, 운동 능력이 다른 학생보다 뛰어났기에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선생님 말씀을 잘 안 듣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하지만 박시영 선수는 특별히 선생님들에게 모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 복도나 다른 반을 들여다보면 일반 학생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가 맞물린 청소년기이기에 자기 진로에 대해 고민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운동선수라고 누가 봐도 확실한 재능이 아닌 이상 운동을 그만둔다고 해도 놀리거나 비난하기보다 오히려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때였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운동을 그만두고 일반 학생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몇 있었다. 친구들끼리 하는 체육에 가까운 운동만 했지 제대로 된 스포츠를 한 적 없는 그때 우리 또래는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준이 프로 선수나 국가대표 선수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학생으로 복귀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잘 나가는 선수들과 비교했고 실력이 부족해서 그만둔 거 아니냐며 철없이 놀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런 모습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스쳐 가는 이야기처럼 흘려들어 버렸던 나를 생각했을 때 지금 불편한 것을 보면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프로 선수가 된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 각 구단의 인터넷 페이지에 들어가 선수들을 찾았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얼굴과 프로필을 보면 기억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봐도 내가 아는 선수는 하나도 없었다. 아쉬움으로 가득할 때 롯데 자이언츠 투수 소개에 자리 잡고 있는 박시영 선수의 모습을 보며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도 대견함이 느껴졌다. 당연히 프로 선수가 될 줄 알았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프로 선수가 되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를 익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박시영 선수의 기록을 찾아봤고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아니었지만, 가끔 경기 중계에 박시영 선수가 나오면 채널 돌리는 일 없이 잘하기를 바라며 지켜봤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볼 법한 엄청난 강속구나 제구력으로 타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모습은 없었다. 대부분 중간 계투나 패전 처리로 나왔고 대량 실점을 책임지는 모습이 많았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고 아쉬운 장면으로 만날 때마다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KT 위즈로 이적한다는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잘 되기를 바랐다. 팀을 잘 만난 것인지 박시영 선수는 2점대 평균자책점을 만들었고 급기야 그해 리그 우승까지 하는 경사를 맞았다. 자신을 잘 활용하는 팀과 지도자를 만났을 것이고 본인도 절치부심해 계속 노력했으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끝까지 못 하고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한 우리 삶이기에 포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기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돌린 채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그 용기마저 색이 바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박시영 선수는 병역 의무를 상무 생활이 아닌 현역병으로 마쳤다. 부상도 경험했다. 정식 선수에서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정식 선수가 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순간마다 정확한 심정은 알 수 없지만 절박함과 열정으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행복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러 고난 속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박시영 선수의 모습을 보며 어릴 적보다 보잘것없는 크기로 줄어버린 열정을 가진 나를 반성하게 된다.
박시영 선수보다 더 늦은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선수도 많지만, 박시영 선수보다 일찍 은퇴한 어린 선수도 많다. 박시영 선수의 나이도 어쩌면 은퇴를 생각해도 늦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박시영 선수는 공을 던지고 있다. 내가 직접 경기장을 뛰는 것을 아님에도 그런 모습을 보면 숨어있던 용기가 나는 것만 같다. 우직하게 자기의 길을 걷는 박시영 선수를 계속 응원하고 싶다.
글을 쓰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박시영 선수가 경기 중에 부상당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봤다. 마운드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차마 영상을 다 볼 수 없었다. 팔꿈치 뼈와 인대 손상으로 수술해야 하고 이번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너무 안타깝다. 부디 잘 회복해 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