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는 개그맨 박명수의 어록은 내게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마음에 와닿는 일이 늘고 있다. 아무런 대비 없이 허송세월하다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다면 그만큼 다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기에 막막함은 더 커진다. 내가 지금 그런 상황이다. 요즘 나는 숫자와 싸우고 있다. 한편으로는 숫자를 줄이는 데 애쓰고 있고 한편으로는 늘리는 데 애쓰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확진자 말고도 ‘확찐자’가 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겨울부터 점점 살이 찌고 있었고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데 몸무게를 쟀을 때 눈을 의심했다. 군대에서 경계근무 후 늘 야식으로 라면을 먹었을 때 체중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거울 속 나는 분명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살이 빠지진 않더라도 찔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방심이었다. 늘 입던 바지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때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자전거를 항상 타서 허벅지 근육이 커졌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근육이 아니라 살을 늘려가고 있었다. 편안했던 몸이 무게를 알아차린 그때부터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날로 체중 감량하기로 마음먹었고 라면을 끊었다. 몸이 나트륨과 밀가루를 원하는 게 느껴진다. 아예 안 먹는 것은 너무 괴로워 최소한으로 먹으려고 애를 쓰는데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먹는 데 오는 고통뿐만 아니라 운동에서 오는 고통도 달갑지 않다. 평소보다 운동량을 늘렸다. 휴일 저녁은 항상 달리고 있다. 군대에서 무릎을 다쳐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최대한 부담을 안 주려 하지만 살을 빨리 빼고 싶은 조급함이 나를 무리하게 만든다. 살을 빼는 만큼 연골도 잃는다. 이렇게 체중계에 보이는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고 애를 쓴다.
살을 빼려고 열심히 운동하다보니 다른 데 욕심이 생긴다. 달리는 양을 늘렸을 뿐인데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다. 게임처럼 체력 수치가 올라가는 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분명 운동을 고되게 했음에도 다음 날 아침이 개운하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오면 늘 피곤했던 것도 덜해졌다. 주변 사람은 살이 빠지니까 비염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나도 덩달아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코 막힘과 콧물이 적어지고 들이마시는 공기가 괜히 상쾌하다.
몸에 느껴지는 건강함은 의욕을 키운다. 몸무게는 줄이되 그 과정 가운데 이뤄지는 운동의 숫자는 늘리려고 애를 쓴다. 1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턱걸이 횟수를 점점 늘리고 있고 달리는 거리를 늘리고 있다. 5km, 7km, 10km. 숨이 차서 머릿속에 가득 찼던 포기 욕구와 이를 두둔할 합리화는 점점 사라졌다. 의기양양함에 벌써 마라톤 선수가 된 것처럼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상상에 빠져 지내기도 한다. 변화라는 게 기분 좋으면서도 무섭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삶에 넉넉함이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다. 나이 먹으면 힘들다는 어른들의 말은 내게 해당하지 않는 일일 줄 알았는데 나의 30대도 팔팔했던 10대, 20대보다 체력으로나 정신력으로나 떨어져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간극을 줄이고자 노력 중이다. 게을러지면 결과로 반드시 나타난다. 이를 회복하는 시간은 너무나 길고 그동안 감수해야 하는 고통도 괴롭다.
시절에 맞는 몸과 마음가짐이 있기에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주책맞은 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일부러 포기하는 것도 목표를 낮추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숫자와 싸움은 나를 위해서라도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