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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r 28. 2022

로컬관제원이 되었다

노동요 - 철도 인생

노동요 - 철도 인생

2021년 5월부터 내 담당 업무는 역무원에서 로컬관제원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MBN 예능 <돌싱글즈> 시즌 1에 출연한 직원의 업무로 잠깐 소개되었던 이 일은 직무기술서를 살펴보면 ‘접점에서의 열차 운행 안정성 제고를 위해 역에서의 운전 취급과 입환 업무를 수행하며 관련 설비를 운용함’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역 설비 및 운전 취급, 열차 조성 및 입환 등이 업무라고 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이름 그대로 관제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로컬관제원은 관제사와 현장을 연결하는 중계원이다. 관제사는 관제센터라는 곳에서 큰 화면을 보며 현장을 통제, 관리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과 떨어져 있고, 관리해야 하는 구간이 넓기 때문에 구역을 나눠 현장 직원에게 통보하고 현장 직원은 그대로 전달한다. 이 역할을 로컬관제원이 하는 것이다. 담당하는 곳의 교통정리를 한다고 보면 되겠다.


전철을 타기만 하는 사람 입장에는 전철은 일반 자동차 운전하듯 기관사가 알아서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철을 타다 보면 가끔 열차가 늘 도착하던 승강장과 다른 곳에 들어오는 때도 있고 다른 선로로 지나가는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전철이 움직이는 데는 더 복잡한 과정이 있다. 운행은 신호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이 신호가 꺼져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안전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빨간 불에서 파란 불이 되면 차가 움직이듯 파란 불을 수시로 켜주고 늘 다니는 선로가 막혀 있으면 선로를 변경해 다른 선로로 움직이게 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로컬관제원의 업무다.


철도의 전반적인 업무와 여러 가지 상황에 익숙해야 업무 수행이 수월하기에 입사하자마자 할 수 없다. 역무원으로 일정 기간 근무했을 때 교육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며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았을 때 로컬관제원으로 일할 자격이 생긴다. 


이렇게 글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로컬관제원은 많은 사람이 꺼리는 일이다. 그 이유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신호를 관리하는데 내 잘못된 클릭 한 번에 열차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또 수많은 열차, 작업자와 무전해야 하는데 내 잘못된 무전 한 번에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여러 안전장치가 있지만 내 실수에 큰 사고가 날 수 있고 이를 책임져야 해서 업무 초창기나 이 업무에 대해 고민할 때 겁먹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을 기피하는 다른 이유는 피곤하기 때문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일하는 내내 신경을 쓰느라 피곤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남들 쉬는 한밤중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 낮에도 업무가 있지만, 열차가 끊임없이 다니기에 간단한 일만 한다. 밤이 되면 열차가 다니는 동안에 할 수 없었던 선로 보수, 전차선 정비를 비롯한 다양한 작업이 진행된다. 로컬관제원은 이들과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협의하고 통제한다. 쉬는 시간이 있지만 평소 눈을 붙이지 않는 시간에 쉬어야 하고 잠을 자는 시간에 일해서 밤에도 제대로 쉰다고 할 수 없다. 활동 시간대가 바뀌고 쉬는 시간도 줄어 몸에 많은 무리가 간다.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이가 많다. 로컬관제원으로 1년 반 이상 일했을 때 팀장 등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간만 딱 채우고 나오는 사람이 많다. 모든 역이 지나다니는 열차 수와 하는 작업 수가 같지 않아 조금은 한가한 역에 여성이 많이 투입되고 바쁘고 힘든 역에 남성이 많이 투입된다. 여성을 위험한 곳에 배치하면 곤란하다는 편견이 사내에 남아 있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조금씩 그 경향이 줄고 있다. 


그렇다고 로컬관제원이 나쁘고 힘든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5년, 10년 등 일정 기간 안전하게 일하면 무사고 포상이 있다. 그래서 경력만 채우고 나가는 이와 다르게 이 일만 수년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 일이 익숙해져 다른 업무를 못 하겠다는 것도 이유지만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일만 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역무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각양각색이며 그 정도는 상상 초월이다. 고객 응대로 생기는 힘듦을 겪는 것보다 잠 못 자서 생기는 힘듦을 겪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일을 원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일의 묘미는 생각한 대로 일이 맞았을 때 얻는 쾌감이다. 막혀 있던 열차를 하나씩 보내면서 지연된 시간을 줄이고 정시 운행으로 맞추었을 때 그 뿌듯함은 여운이 오래간다. 교육받을 때 “너무 겁먹지 말고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라”는 말이 기억난다. 가벼운 묘사일 수도 있지만 정말 일할 때 테트리스나 단순 타임 어택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든다. 경쟁이 아니기에 조급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하지만 정말 큰일이 일어나면 그 순간만큼은 가슴 졸이게 된다. 나는 아니지만, 이것을 스릴로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역무원으로 일할 때는 연락할 일이 별로 없던 신호, 건축, 시설, 전기, 운전, 승무 등 다른 직렬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즐겁다. 그들이 내 무전과 신호에 맞춰주었을 때, 그리고 무사히 일을 다 마쳤을 때 같은 회사 직원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아 동료애가 생긴다. 양방향 통신이 아님에도 무전을 할 때는 마치 라디오 DJ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수다를 떨고 싶지만, 말이 길어지면 정보 전달이 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도 있다.


처음 로컬관제원을 할 때는 용어도 어렵고 무전도 잘 들리지 않아 힘들었다. 하지만 업무가 익숙해져서 여유가 생긴 건지 점점 노련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모르면 물어보면서 하면 된다. 이례 사항이 생기면 관제사와 상의하고 업무가 어려우면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걸 알면서도 되지 않는 이유는 창피해서다. 모르는 건 창피한 게 아니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고 실수했을 때 창피한 거다. 모든 일의 기본이자 치트키인 질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수월히 할 수 있다. 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니 업무에 조금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면 답변하는 사람이 보통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못된 사람들은 답변은커녕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내에도 진상이 있기 마련이다.


최소한의 경력만 쌓는다 하더라도 2022년 한 해는 로컬관제원 업무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즐겁게 이 일을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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