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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Dec 15. 2023

그녀가 웃잖아 - 김형중

뮤직톡톡

https://youtu.be/xA2B46fEORM


군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에 적응 못 하던 복학생 시절, 복수전공을 노리며 다른 학과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그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밝은 미소는 주변에 사람을 끌었고 그 미소만큼 성격도 밝았다. 누가 봐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발표가 많은 수업이라 자발적으로 조를 만들게 된다면 어떻게 끼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니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다행히 전부 교수님이 임의로 조를 만들었다. 이것은 내게 전화위복이자 최고의 기적이었다. 그 여학생과 같은 조가 됐기 때문이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조원들도 친절해 지루할 법한 매주 금요일 3시간짜리 수업은 그 학기 내내 가장 기대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발표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는 것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휴학 전에 망쳐놓은 성적을 어떻게든 만회하겠다며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지냈다. 사실 이건 명목상의 이유였다.  같이 놀 사람이 없어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거나 예습, 복습하는 게 일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적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서관에서 그녀를 종종 만났다. 자기 일하기 바쁜, 아무도 인사하지 않는 도서관에서 먼저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가 정말 고마웠다.


숙맥인 나도 인간이긴 했는지 두근거릴 때가 있었다. 다만 이게 무슨 기분이고 느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은 인간적인 호감과 이성적인 호감 사이에서 후자에 무게가 조금 더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은연중에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아무 수작도 벌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라며 내 사람 보는 안목만 자찬했다. 


초고속 열차를 탄 것처럼 그 학기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이후 그 여학생과 같은 수업을 받은 일은 없었다. 그래도 과는 다르지만 같은 건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학기가 끝나고도 만나면 인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졸업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기억에서 점점 지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만남은 짧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그랬기에 조금은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든 우연의 연속에 만남이 이뤄진다. 삶의 행적이 달라 다시 만날 인연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밝았던 그녀의 앞날도 밝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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