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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pr 28. 2020

멍때리기 대회 입상하는 법

이제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봄이다. 추운 겨울을 지내면 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코끝이 찡해지는 찬 바람이 아닌 포근하고 따뜻한 바람이 감싸기 때문이다. 적당히 부드러운 느낌의 햇살까지 내 몸을 비추는 날에는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나온다. 지금은 봄기운만 반기는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도 반기긴 하지만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다면 봄의 정취를 즐기는 사람으로 붐빈다.


커플들의 산책, 잔디 위에서 휴식. 좀 지겹지 않은가. 부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조금 색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감정을 겨냥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참신한 이벤트가 있다. 각종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 지친 머리를 아주 상쾌하게 만들 만한 빅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바로 ‘멍때리기 대회’다.


멍때리기 대회란

멍때리기 대회는 웁쓰양 컴퍼니에서 주최하는 대회이자 일종의 행위 예술이다. 대회라면 뭔가를 해내는 것을 경쟁하는 것인데 이 대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경쟁한다. 2014년 10월 27일 서울시청 잔디광장에서 처음 개최되었고, 서울 한강, 대구 등 전국대회 및 세계대회가 열리고 있다. 2016년에 가수 크러쉬가 참가해 우승한 대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이상한 대회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역으로 참가를 권하고 싶다. 당신도 한 번 도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당신이 수상 욕심이 있다면 당신을 수상자 명단에 오르도록 도와줄 수 있다. 나는 2017년 멍때리기 대회 수상자 중 한 명이다. 내 지도를 감당할 수 있다면 당신도 효과적으로 멍때릴 수 있다. 전적으로 나를 믿어야 한다. 차근차근 접근해보자.


Chapter 1. 접수

어떤 대회든 접수하지 않으면 참가할 수 없다. 웁쓰양 컴퍼니 홈페이지나 SNS를 찾아보면 공고가 나올 것이다. 이 대회를 하찮게 여겨 접수 과정을 대충 밟는다면 큰코다칠 것이다. 신중하게 작성해야 한다. 이 대회는 남녀노소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대회이기에 성비나 연령대, 직업군이 다양하도록 선발한다. 이 대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의 상당수가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젊은 나이라면 사연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사연이라 함은 왜 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은지 등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심이 드러나도록 적어보자.


팀으로도 참석할 수 있다. 만약 혼자 참가할 용기가 나지 않거나 멍때리는 데 재능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 내어 부탁해 동반 출전하는 것도 좋다.


정해진 기한 내에 접수를 마치면 선정자에게 예선 참가 초청 문자가 들어올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면 된다. 만약 기회를 놓쳤다면 실망하지 말자. 현장 접수로 소수 뽑기도 한다. 대회 당일 대회 장소로 가 마지막 기회를 노려보자.


Chapter 2. 준비

멍때리기 대회라고 해서 그냥 멍만 때린다고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멍때리기 대회의 채점 방식은 나름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대회 수상자는 예술과 기술 점수를 합산해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다.


예술 점수는 현장에서 관객 투표가 이루어지는데 그 투표에서 높은 투표수를 받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기술 점수는 심박 검사다. 경기 시작 전 잰 심장 박동 수를 시작으로 대회 시간동안 30분마다 잰 심장 박동 수를 그래프로 만들어 가장 낮은 심박 수를 기록한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제대로 멍 때리고 있다면 심장 박동 수는 떨어지기 마련이기에 얼마나 많이 떨어지느냐가 관건이다.


당신이 아무리 날고 기는 멍때리기 능력자라 할지라도 넓게는 전국, 아무리 지역을 좁혀도 수도권 내 능력자들이 참가한다. 그들 사이에서 승리하려면, 대회에 참가했다는 데 의의를 두지 않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에 일정 시간 멍때리는 연습을 해보자. 더 나아가 실전 시각에 맞춰서 해보자. 두 발 더 나아가 밖에 나가서 해보자.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Chapter 3. 결전의 시간

이제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늦지 않게 대회 장소로 가 선수 등록을 하자.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하러 와도 놀라지 말자. 여유 있게 인터뷰하는 센스를 발휘하자. 선수 등록이라고 방심할 수 없다. 선수 등록은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선수 등록할 때 처음으로 심박 검사를 하기 때문이다. 심장 박동 수가 높을수록 유리하다. 왜냐하면 기술 점수를 높게 받을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 120이 나왔는데 마지막 심장 박동 수가 50이라면 70이나 떨어트렸기 때문에 그 후 경기에 집중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수상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선수 등록 전 전력 질주를 해 심장 박동 수를 높이는 꼼수는 부리지 말자. 당신은 엄연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스포츠 정신이 필요하다.


등록을 마치고 선수 번호를 받으면 거대한 게시판에 자신의 대회 참가 이유를 적을 수 있다. 그 게시판이 관객들의 투표가 이뤄지는 예술점수 게시판이다. 보통 예술점수는 어린이, 수능 실패, 취업 실패 등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얻기 유리하다. 당신의 사연이 무미건조하다면 예술점수는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괜히 불쌍한 척, 튀는 척하지 말자. 관객들은 냉정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쓰거나 도발해도 관객은 특별히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참가 이유, 각오 등을 상황에 맞게 잘 쓰면 된다. 만약 관객이 진정성을 느낀다면 표는 저절로 따라온다.


대회는 준비 체조를 하고 시작된다. 내겐 국민 체조, 청소년 체조, 국군 도수 체조 이후 겪는 체조였다. 범상치 않은 모습의 선생님의 주도하에 기체조로 몸을 풀고 시작된다. 도중 웃음이 터질 때가 있다. 만끽하자.

대회가 시작되면 30분마다 심박을 검사한다. 주변을 의식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하자. 경기에 집중하면 경기가 끝나고 눈이 건조해져 감기가 힘들어질 정도가 된다. 심판들이 주변을 돌며 멍을 잘 때리고 있는지 확인한다. 졸거나 다른 짓을 하는 등 멍때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1차 경고를 받는다. 경고를 또 받는다면 그대로 실격이며 경기장에서 퇴장당한다. 퇴장당하는 그 모습은 마치 대역죄인 같다. 다리에 쥐가 날까 걱정하지 말자. 조금 움직이는 것까지는 봐준다. 하지만 그마저도 무아의 세계로 가면 인식하지 못한다.


Chapter 4. 시상식 및 단체 촬영

경기가 끝나면 채점을 위해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지친 몸을 풀며 결과를 기다리자. 상은 1등, 2등, 3등, 특별상으로 나눠진다. 특별상은 예술 점수는 높게 받지 못했지만, 기술 점수에서 탁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러니까 상 받고 싶으면 열심히 멍때리면 된다. 1등 수상자에게는 트로피와 함께 세계 대회 진출 자격이 주어진다. 2, 3등과 특별상 수상자은 상장을 준다.

단체 촬영을 하기 위해 단상 주변으로 참가자들이 모이면 올림픽 정신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화합과 선의의 경쟁이란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슬며시 찾아올 것이다.


대회를 마치고

대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참가자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대회의 재미를 위해 새로운 규칙이나 경기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대회 진행자가 제시할 정도로 대회는 치열하다. 하나의 대회로서 격상을 높이고 싶다면 고려할만한 일이다.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보다는 정말 멍때리기에 집중해 경기 자체가 점점 지루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대회의 수상자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 대회도 역시 젊음이 중요한가 싶으면서도 해맑게 뛰어놀아야 할 친구들이 왜 벌써 멍때리고 있나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친구라고 쉼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부정적인 견해는 직접 해본 뒤에 표현해도 늦지 않다.


다양한 사람이 멍때리러 이 대회에 참가한다. 누구는 정말 멍때리고 싶어서, 누구는 뭔가를 홍보하고 싶어서, 누구는 호기심에. 각자 다양한 목적으로 참가한다. 어느 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이건 예술이니까. 대회에 참가하고 나면 물질적으로 얻는 것이 없어 아쉬워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했을까?’ 현자 타임에 빠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짜로 멍에 빠진다면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괴짜 대회로만 여긴 이 대회의 취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멍때리기 대회를 하고 나면 결론은 한 가지다. 우리 모두에게 순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


순간의 휴식을 얻었다면 상을 얻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수상한 거나 다름없다.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지? 오글거리는 그대로다. 진정한 승자는 당신이며 상은 스트레스가 날아간 당신의 육신이다.


화창한 봄날, 당신도 멍때리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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