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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n 16. 2020

대한민국은 계속 먹는다

먹고 또 먹고. 대한민국 예능은 계속 먹는다. 인터넷 방송에서 등장한 ‘먹방’은 이제 케이블 채널과 지상파 방송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최근 본 방송들을 기억해보면 먹는 게 빠짐없이 나온다.


인간의 삶의 요소 중 세 개인 의식주. 그중에서도 식은 가장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뭔가를 먹음으로 에너지를 체내에 공급해 생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내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만 만족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내가 먹지 않고 남이 먹는 것을 보고 들어도 만족을 누릴 수 있다. 먹방이라는 콘텐츠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먹방은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요리하고 시식하는 형태였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에 불과한 이 콘텐츠가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 형태로 진화했다. 우리가 흔히 먹방이라고 부르는 콘텐츠의 유행을 이끈 시초는 인터넷 방송이다. 인터넷 방송의 BJ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거기서 파생되어 나온 먹방의 포맷은 다양하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폭식, 음식을 만들어내는 ‘쿡방’ (이미 <오늘의 요리>를 비롯한 다양한 조리 관련 콘텐츠가 있었지만, 실시간 소통하는 콘텐츠로써 쿡방의 유행은 인터넷 방송의 등장 후다), 음식을 먹는 소리를 들려주는 ASMR 등 다양하게 장르를 확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제한 시간 동안 음식을 먹거나 음식에 대해 평가하는 ‘미식형’ 콘텐츠도 있다. 그래도 인기를 끄는 대부분의 먹방들은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행동보다 맛있게 먹으며 꾸준한 소통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잡는 먹방이다. 


이 먹방 시청의 이유를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생활과 문화 변경도 영향으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영국 BBC는 한국인의 먹방을 뉴스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먹방은 한국인의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파티라는 것이다. 직접 마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모니터를 통해 마주 본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는다. 혼자 식사하는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먹방을 본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먹방의 흥행 이유로 루키즘을 꼽는 사람도 있다. 전문가들은 먹방·쿡방이 인기를 얻는 이유에 대해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많은 현대인에게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비만이 게으름의 상징이 되고 외모가 선택이 아닌 필수 스펙으로 간주되는 요즘 세대에 다이어트 탓에 식생활을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먹방이나 쿡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개도 밥 먹을 때는 안 건드린다.” 밥 먹을 때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을 극히 꺼리는 우리는 남들이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것조차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쳐다봐야 돈을 번다. 이제는 쳐다보면 욕구가 해소된다. 직접 보면 기분 나빠하지만 먹방은 그렇지 않다. 단지 모니터와 스마트폰이라는 창을 통해서 보는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정말 ‘푸드 포르노’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식과 관련된 욕구를 해소해준다지만 계속 나오는 먹방이 점점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보는 식사도 자꾸 나오면 포만감을 넘어 버거움으로 다가온다. 먹는 거로 감정을 풀기엔 지친다. 해소할 다른 방법들도 많은데 말이다. 채널 돌릴 때마다 다 먹는다. 먹는 것과 관련된 채널, 장르도 아닌데도 꼭 먹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 배부른 상태일지도 모르는데도 입맛을 다신다.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이다. 먹방을 규제하겠다며 건강세가 계속 거론되는 것도 사회의 당연한 흐름이다.


누군가는 지겹다며 먹방 콘텐츠를 욕하기도 한다. 다른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방송가의 무능이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 먹방에 대해 흥미를 끄는 댓글이 하나 있었다. 표현이 과격하지만, 지금의 콘텐츠 현황을 대변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 예능 1. 맛집 가서 처먹기 2. 맛집 가서 한입에 많이 처넣기 3. 직접 만들어 처먹기 4. 처먹는 거 관찰하기 5. 외국인이 처먹는 거 관찰하기 6. 외국 가서 외국인 먹이기


이런 반응에도 여전히 먹방은 우후죽순이다. 꺼리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제는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 차별점을 둔 방송이 등장한다. 고등학생들이 요리하고 복면 쓴 사람이 요리한다. 어린이나 동물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촬영한 콘텐츠도 나오고 있다. (어린이가 대왕문어를 먹는 영상을 업로드한 유튜버는 사과문을 올리고 영상을 삭제했다.


계속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청자에게는 먹방이 더는 큰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이에 따라 색다른 먹방, 예를 들어 식욕을 해소하는 먹방이 아닌 식욕과 관련 없는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먹방 콘텐츠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흥행을 이어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제는 먹방이라는 콘텐츠에 피곤함을 호소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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