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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l 02. 2020

박쥐

아주 먼 옛날, 들짐승과 날짐승은 서로 자기들이 더 힘이 세다고 우겼다. 싸우는 두 집단 사이에서 박쥐는 어느 편을 들까 망설였다. 싸움을 지켜본 박쥐는 들짐승이 이길 것 같을 때는 자신이 쥐를 닮았다며 들짐승의 편을 들고 날짐승이 이길 것 같을 때는 자신은 날개가 있다며 날짐승의 편을 들었다. 계속된 싸움에 지친 들짐승과 날짐승은 화해했고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박쥐는 비겁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두 집단에 모두 따돌림당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대우받고 누리며 사는 이상향을 꿈꾼다. 그래서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있을 때 모두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어쩌면 줏대 없는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 무게 중심을 둠에 따라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느 한쪽도 편에 서기 힘들다. 기업의 채용 관련 이슈, 청년들의 취업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와 관련된 내 입장이 그러하다. 


채용이라는 파이가 있다고 하자. 파이는 경쟁을 통해 주어졌다. 시험, 면접 등의 과정을 통해 누군가는 합격을, 누군가는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파이를 두고 경쟁할 기회마저 줄어들고 있다. 경쟁하기도 전에 그 파이가 누군가에게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직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미 작아진 파이를 두고 취업준비생들은 경쟁해야 한다. 채용의 문이 더 좁아졌다. 


그렇다고 이 문제의 책임을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돌려야 할까? 비정규직 관련 문제는 우리 사회에 이미 예전부터 자주 등장했다. 사고가 발생해도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잠잠해지면 문제가 다시 터지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예전부터 스크린도어나 엘리베이터 관련 근로자들의 좋지 않은 근무환경은 대형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조명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남의 동네일이 아니었다. 가까운 내 주변에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필수 과제임은 틀림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문화사회에서의 소수자 권리 보호, 증진에 표현한 주요 이주 정책 모형이 있다. 이 정책 모형은 이주가 아닌 채용에 초점을 맞춰도 말이 되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다문화 모형이다. 이민자가 그들만의 문화를 지키는 것을 인정하고 장려하며 정책의 목표를 소수 민족의 주류 사회로의 ‘동화’가 아닌 ‘공존’에 둔다. 흔히 샐러드 볼에 비유되는데 이는 샐러드가 다른 형태와 맛을 가진 각종 채소와 과일들이 모여 공통의 드레싱에 의해 공평하고 동등하게 뒤섞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킴으로 공평, 동등하게 대우받길 바라는 비정규직 근로자와 이를 지지하는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은 이 다문화 모형에 가깝다.


요새 우리 회사에서 계약직, 용역직에 불과했던 직무들이 정규직이 되니 나도 뿌듯하고 기쁘다. 그들의 유니폼부터 달라졌고 임금이나 휴가, 기타 복지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안전해졌다는 것이다. 처우가 개선된 후에는 회사뿐만 아니라 근로자들 스스로 안전에 경각심을 갖는다. 업무 규정 같은 규칙들이 조금 더 깐깐해져서 툴툴댈 때도 있지만 정말 못마땅해서 터뜨리는 불만이라기보다는 귀여운 투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정당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사람인데 기회를 타고 들어온 사람을 보고 있자니 자기의 노력이 무시당하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무분별한 정규직화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고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차별배제 모형에 가깝다. 차별배제 모형은 경제특구나 수출 자유 지역과 같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직업과 관련해서만 외국인이나 이민자의 유입을 받아들이고 그 외에는 외국인이나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외부인의 정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배타적인 정책이다. 채용시험을 뚫고 들어온 청년 근로자와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외부자다. 자신이 힘들게 들어온 회사라는 땅에 외부인이 쉽게 정착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제로 상사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힘들게 입사한 사람들은 자기보다 편히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불만을 품는다고 말했다. 그때 돌아온 답은 “사람의 타고난 운이다. 그건 뭐라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운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따라주는 것이 아니지 않으니까. 이제 같은 식구가 되었으니 미워하고 편을 가르기보다 품어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데도 나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일까? 나는 청년들이 많이 취업에 성공했으면 좋겠고 그들을 응원한다. 더 단순하게 생각해서 청년들이 돈을 벌기를 바란다.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돈을 벌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수입이 생기길 바란다. 어릴 적만 해도 돈과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경제적으로 연결되고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청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MBC <뉴 논스톱 4>의 등장인물인 앤디가 나올 때마다 하던 말이 있다.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2019년 5월 기준으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년 실업자 43만 7천 명이다. 청년 취업이 여전히 곤두박질이라고 난리다. 내 주변에도 취업하지 못한 선배, 친구, 동생들이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격려조차 하기가 미안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7월 들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파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달라는 요구와 정규직화가 되었지만,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 문제다. 비정규직 축소와 차별 해소는 필요하다. 정규직화도 기업마다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예산의 문제가 있다. 자회사 설립을 통해 직고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사항은 자회사는 자신들의 처우 개선이 보장받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무조건 떼쓰면 정규직이 된다며 꼬우면 시험 보고 정규직이 되라며 비아냥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파이를 가져갔다는 생각에 취업준비생과 공채시험 통과자들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시선이 비정규직 출신 근로자들은 불편하다. 그런데 비판의 대상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파이를 두고 다투게 하는 제도가 문제인데 말이다.


하나의 파이를 두고 나누는 비중을 고려할 게 아니라 파이를 여러 개 만들어 모두 나누어 주는 방법을 고려하거나 하나의 파이를 효율적으로 나눌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겠지만 말이다. 취업준비생에게 파이를 더 주자니,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상황이 신경 쓰인다. 또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파이를 더 주자니, 취업준비생의 안타까운 상황이 마음에 걸린다. 확실한 노선 없이 양쪽 다 응원하고 싶어 하는 내가 우화 속 박쥐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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