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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ug 21. 2020

합창의 재발견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가끔 신문 기사나 방송에서 제목으로 달 때면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오버’하는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내 무지에서 나온 불순물이었고, 제목대로 살아 보고 싶은 내 욕구 불만이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다닐 적 중창단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공연 없는 중창단이었다. 까마득한 선배들은 대회에 나가 수상도 했다는데 내가 학교 다닐 무렵에는 인기가 없어 사람 수가 적었다. 그래서 클럽 활동할 때가 되면 연습만 했다. 그것도 발성과 호흡만. 무대에 한 번 올라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창과는 연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쭈구리 같은 대학생 시절, 연이 없을 것 같던 합창을 다시 만났다. 학교 선배가 ‘합창의 재발견’이라는 강의를 추천했다. 그때 대학 생활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워낙 재미없는 대학 생활을 보냈기에 졸업 전이라도 다른 학과 학생들도 만나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 수강 신청 날, 인기 강의라고 소문이 나 있던 터라 신청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성공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목이 말랐던 것 같다. 무대에 한 번도 서지 못한 아쉬움을 잊고 지냈을 뿐이었다. 다른 이들 앞에서 공연하고 박수를 받든, 야유를 받든 그것은 상관없이 내가 최선을 다해 갈고닦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과 함께 여러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합창 수업이 시작하는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나는 항상 기대로 가득했다. 정말 다양한 노래를 배웠다. ‘이런 노래도 합창으로 가능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이 되면 늘 새로운 곡을 만나고 싶었고, 무엇을 배울지 기대했던 것 같다. 합창 수업은 늘 즐거운 분위기였다. 파트별로 앉아 서로의 소리를 들었고, 교수님의 열정으로 집중하며 배울 수 있었다.


다양한 과의 학생들과 팀을 이뤄 각자 시간을 조정하며 연습한 기억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빨리 노래를 이해하고 잘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발성이나 음을 찾아가는 능력이 다른 조원들보다 부족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서로의 다름이 하나가 되어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합창의 의미이고, 그때 좋은 음악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목소리 하나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떤 일을 할 때 혼자서만 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은 성취감의 크기가 다르다. 물론 후자가 크다. 왜냐하면 그 결과에 영향을 준 것이 나만이 아니라 공동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도 그렇다. 독창보다 합창에서 더 크게 감동하게 되는 것이 그런 이유다.


학기 동안 배운 노래마다 4부로 목소리를 나누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는 한 주의 피로를 날리는 자양강장제 같은 수업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한 수업이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없는 것 같다. 내 대학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시절을 꼽자면 나는 4학년 2학기를 주저 없이 택할 것이다. 


대학 시절 수업으로 끝났다면 즐거움 가득한 추억으로 남겠지만 감동의 순간도 있었다. 졸업 후 학교에서 합창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로 합창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집에서 뒹구는 백수였기 때문에 고민한다는 게 창피할 때도 있었다.  많은 시간 고민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입을 신청했다.


합창단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수업 때와 마찬가지로 실력이 부족한 사람도 많았다. 지휘하시는 교수님께서 그때마다 말씀하셨다 “합창은 모두 하나 되어 불렀을 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말은 제 마음을 울리는 말이었다. 독창이 아닌 합창이기에 나의 만족이 아닌 전체의 호흡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더 생각하게 됐다. 단원들과 함께 더 나은 소리를 만들려 노력했다.


학교에서 세월호 사고 유가족의 북 콘서트가 있었다. 그때 찬조 공연을 하게 됐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더 진지하게 임했다. 우리의 진심 담은 위로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전해지길 소망하며 노래했다. “위로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유가족도 계셨고, 손뼉 치며 칭찬하는 관객도 있었다. 하나가 되었을 때 관객과도 하나 되어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 다닐 때 하지 못했던 교양 공연에도 OB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원래 학기마다 학예회처럼 행사를 개최해 다른 교양 수업과 함께 공연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 기대와 달리 학교는 내가 수업받던 학기에 재정 지원이 어렵다는 이유로 공연 취소를 통보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졸업생이 되어 재학생 시절 하지 못한 공연의 한을 푸니 감회가 새로웠다. 안무도 넣어가며 부른 노래 잠발라야(Jambalaya)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게 그저 단순한 노래 부르기였던 합창은 사람과 조화를 알려준 선생님이 되었고 내 인생 중 의미 있는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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