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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06. 2020

누구나 주역이 될 수 있다

장억

2017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단역으로 활동하는 무명 배우들이 나와 드라마 <김과장>의 OST 곡인 <꿈을 꾼다>를 부르는 특별공연 무대가 있었다. 그들 뒤에는 지금은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들의 과거 모습이 영상으로 나왔다.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유해진을 비롯한 배우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도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이들과 비슷한 시기가 있었기에, 힘들었지만 열정적으로 임했던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그러지 않았을까. 무대를 보며 그들도 빛나는 별이 되길 바랐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중심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회가 따르지 않아서, 다른 이보다 재능이 부족해서, 이 밖에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꿈을 접거나 이루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후세에서 주역으로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다. 후세는 기록을 통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이미지를 만들어 상상한다. 여기 그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름부터 억 소리 나는 남자 ‘장억’이다.


촉의 오호대장군이라 불린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 외에 다른 장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 적들을 자주 쓰러트리는 모습이나 게임에서 높은 능력치를 가진 장수가 몇 없기 때문이다. 위연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제갈량이 북벌할 때쯤이면 유비가 촉에 입성할 무렵만큼 눈에 띄는 장수가 없다.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후세는 촉의 대부분의 장수들을 B급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장억도 그중 하나다. 

장억

장억 백기(伯岐). 익주 파군 남충국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그를 ‘장의’로 알고 있을 것이다. 장억의 억(嶷)이라는 한자는 '억', '의' 두 음이 있지만 총명하다는 뜻의 억으로 발음된다. 하지만 소설 삼국지나 게임 등 접하기 쉬운 곳에서 장의라고 나와 장의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이 때문에 전혀 다른 인물인 ‘장익’의 익과 의과 비슷해 보여 같은 인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둘 다 촉에 충성을 다했으나 다른 인물이라는 걸 기억해주시길.


연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억은 남만 정벌 중 축융 부인에게 사로잡히고, 북벌 중 왕쌍의 유성추에 맞아 다치는 등 패배로써 상대의 강함을 측정해주는 주로 전투력 측정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강유와 동행한 북벌에서 함정에 빠진 강유를 구하기 위해 위나라 군대를 향해 돌격하다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전사해 용맹함과 나라를 위한 충정을 보였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에서는 능력치는 대부분 70대에 속한다. 만능형이라 부를만하다. 70대에 속한 능력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갈량, 여포 같은 하나의 능력치가 최대치인 100에 달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우 그러하다. 눈이 높은 유저들에게는 70대의 능력치는 B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억의 활약 시기가 삼국지 기준으로 후반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삼국지 전반과 중반에 괴물 같은 장수가 많았던 것에 비해 200년이 넘어 등장해 중후반에 활약하는 인물들은 능력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 장억 정도면 수준급이다. 인재가 많지 않은 촉으로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 정도 능력치를 가진 장수를 소속에 두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장익은 내정과 전투 모든 부문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는 장수인 것이다.


삼국지 영걸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공명전에 등장하는 장억은 가히 ‘갓억’이라 불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활약을 선보인다. 스토리 진행상으로는 대사도 별로 없기에 주역이라 할 수 없지만 플레이할 때는 꼭 출전시키는 주역 중 주역이다. 촉나라 후기에 활약한 장수가 몇 없었기에 능력치를 보정해준 것도 있겠지만 역사 속 장억의 능력과 충성심을 높게 산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스개소리로 삼국지 공명전은 조운장억전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조운과 장억이 강력하다는 말이다. 강유나 위연 등을 제치고 장억이 조운과 더불어 투톱으로 나온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삼국지 공명전>

남만 정벌 중 합류하는 장억은 촉나라의 유일한 무도가 계열 병과로 나온다. 첫 번째 클래스인 무도가일 때는 변발로 등장한다. 이때는 레벨이 높지 않아 공격력도 약하다. 그래서 활약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인내를 갖고 키워보자. 대무도가로 전직하는 순간 게임의 전체적인 난이도가 급락한다. 대무도가가 된 장억은 노지심의 모습을 하게 되는데 그 풍채만큼이나 공격력이 ‘억’소리 나게 강하다. 대각선 공격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단 공격도 자주 한다. 무도가 계열 최고 무기인 ‘주작조아’는 흉기 중 흉기다. 장억은 적을 공격할 때 ‘뻑’ 소리와 함께 발차기를 한다. 이단 공격이 일어나 뻑 소리가 두 번 나면 적이 퇴각하거나 빈사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말 사기 캐릭터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캐릭터다.


정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장억이 한 나라의 공직자로서 일을 잘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부임한 월수군은 반란으로 혼란스러웠던 곳인데 그곳을 평정해 안정을 시켰고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자 그 지역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배웅을 했다고 한다. 나라에 대한 충성도 대단했다. 강유가 제갈량의 의지를 이어받아 북벌을 강행할 때 아픈 몸을 이끌고도 행군에 참여해 촉에 대한 충성을 보였다고 하니 정말 강인한 장수이지 않은가?


역사 속 장억의 성격상 장억은 후세에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기 위해 공적을 쌓아 올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실히 자신의 역할에 임했기에 장억은 누구나 주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장억 외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음에도 B급 이미지가 강하거나 잘 알아주지 않는 촉나라 장수들이 많은데 어떤 매체든 다음에 등장한다면 더 조명되길 바라본다. 이 글을 보신다면 삼국지 공명전 꼭 한 번 해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장억의 매력에 빠져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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