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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31. 2020

내 역사 속 거절

인생은 설득의 연속이다. 뭔가를 얻기 위해 상대가 수용할 수 있을 이유나 대가가 있어야 한다. 결정권은 상대에게 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돌아오는 건 거절이다. 인생에는 성공이 많을까. 실패가 많을까. 대부분은 실패 경험이 더 많을 것이다. 거절당하는 것도 실패라 한다면 나는 실패를 정말 많이 맛봤다. 실패를 맛보게 되는 상황도 다양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그 실패의 맛은 언제나 쓰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따라 내 거절의 역사를 세 종류로 나눠 돌이켜보며 밝은 내일을 기원하는 바다.


연애의 거절

<괴테가 읽어주는 인생>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이 없는 인생, 곁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못한 인생은 여러 에피소드가 섞인 ‘서랍식 희극 즉 서랍만 잔뜩 있는 시시한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서랍을 차례로 하나씩 열었다 닫고 서둘러 또 다음 서랍을 연다. 서랍만 엄청나게 여닫는다. 눈물이 난다. 설령 근사한 일이나 의미 있는 일을 찾아냈다고 해도 그 모든 일이 결코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 서랍 속엔 초콜릿처럼 달콤한 시나리오는 하나 없었다. 나는 소개팅을 하면 거침없다. 거침없이 거절당한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정도로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 질주한다. 아무리 잘해줘도 잘 안되더라. 잘해주기만 하는 것보다 밀고 당기기를 하라는데 이게 잘 안 된다. 상대를 만나는 순간 “아니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내 조상이 5천 년 사대 역사의 나라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그 옛날 중국의 사신을 융숭히 대접하던 조상님의 피가 내게도 흐른다는 것을. 굴욕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온 마음 다해도 결과는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거절을 당한 지금은 연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라고 말하면 황상민 연세대 전 심리학 교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그건 본인이 관심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너무 자신감이 사라져서 자신에게 변명과 핑계하는 거’라고. 먼저 팩트 폭격당하기 전에 셀프 폭격한다. 그럼 뼈를 맞지는 않을 테니까.


취업의 거절

지금까지 내가 썼던 자기소개서는 컴퓨터에 저장된 것 기준으로 세어보니 총 105개다. 지워버린 것과 대외활동 지원 자기소개서도 포함한다면 130개 이상은 될 것이다. 나보다 자기소개서를 많이 쓴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많고 적음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치열하게 했는데도 미역국 드링킹을 반복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여기 저장된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회사 중 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그 회사도 미역국을 건넸다면 자기소개서가 더 많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취업준비생 아자! 아자! 파이팅!


취업준비생은 알겠지만, 취업은 한 단계 올라가는 과정마다 살얼음판이고 피 말리는 과정이다. 스릴 넘친다. 언제 내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광속 탈락은 당연히 멘탈 붕괴를 일으킨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달했다고 느꼈을 때, 그러니까 서류 정도는 무난히 통과한다고 생각했을 때 예상보다 빨리 떨어져도 멘탈은 무너진다. 내 안의 오만함이 사라지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면접에서 떨어져도 슬픔의 정도가 심하다. 좋은 인상을 만들기 위해 얼굴을 펴주는 “개구리 뒷다리”를 반복한다. 아마 입술이 배트맨의 숙적 조커만큼 됐을 것이다. 내 얼굴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나는 결과 발표 뒤 출근길이 아닌 도서관 등굣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 옆에 있던 그 사람이 나보다 뭐가 나을까. 나는 무엇이 부족한가. 수학 난제를 풀 듯 또 구하지 못하는 답을 구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아무리 찾으려고 애써도 나오지 않아 내 탐색 활동이 전설의 동물 기린, 유니콘, 여자 친구를 찾는 것과 같음을 깨닫는다.


입고의 거절

책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가 신경 쓰지 않는다. 취미든 기행이든 어떤 의도로 만들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책을 유통하는 과정이 어렵다.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시중에 나와 있지 않은 미지의 책을 받아달라고 하면 받아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 있는 독립 서점을 존경한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장소의 여유가 없기에,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기에 입고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거절의 이유를 적어 답장을 보내주는 곳도 있다. 이런 거절은 정말 고맙다. 하지만 메일을 읽고 아무런 답이 없으면 상처 받는다. 입고 메일을 무시당한 메일의 수를 세어 본다. 수없이 많네. 일, 십, 백, 천, 만이 아니라 ‘읽씹’ 백, 천, 만이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있다. 글이 재미없어서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 거라고. 그렇다. 재미없어서 안 받아주는 것도 있을 것이다. 시장은 냉정하다. 이를 채찍 삼아 더 재미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저희 익주 받아주신 서점 사장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래도 나는 성숙해진다

거절에 대한 감정의 변화는 죽음의 5단계(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와 같은 흐름을 거친다. 처음 거절당하면 부정한다.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면 자신의 상황을 부정한다. 이 같은 반응은 비단 죽음의 과정에서만 겪는 일이 아니란 것이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같은 말을 하며 내가 거절당한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의심하게 된다. 다시 한번 결과를 확인한다. 하지만 통보된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가끔 전산의 오류 등의 이유로 번복되지만, 그 가능성은 로또 1등 할 가능성과 비슷하다 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는 분노의 단계다.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이 분노의 대상이 된다. 만약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주변이 가지고 있다면 시기와 질투로 시비를 걸게 된다. 직장이 있는 친구, 이성 친구가 있는 친구 등 타깃은 다양하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무엇이든 분노로 연결되는 단순의 절정을 보게 된다. 낳아주신 부모님 탓은 기본이요, 형제, 친구 등 분풀이의 대상을 찾게 된다. 종교가 있다면 절대자에게도 삿대질을 시전한다. 나 역시 하늘을 향해 삿대질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이었다. 묵묵하게 기다려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 번째는 협상의 단계다. 분노의 과다한 분출로 인해 진이 빠진 사람은 더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협상을 시작한다. 대상은 절대자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 한 번만 도와주세요. 도와주신다면 착하게 살겠습니다. 사회에 공헌하면서 살게요.” 엄청난 맹세를 한다. 영화나 만화에서는 사람의 이런 욕망을 이용하는 악마가 등장한다. 수명이 줄어드는 등 리스크가 큰 거래를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다. 설령 무지막지한 맹세 때문인지 우주의 기운이 집중됐는지 문제가 해결된다면 맹세의 이행은 없다. 사람은 간사하다. 어느새 까맣게 잊고 지낸다.


네 번째는 우울의 단계다. 별짓을 다 해도 협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울증이 찾아온다.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미래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이제 어떡하지’라고 고민하지만, 고민이 꼬리를 물고 물뿐 해결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은 수용의 단계다. 모든 일에 초연 해지는 ‘현자 타임’이 시작된다. 삶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니냐며 해탈하는 것이다. 차분해 보이지만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있는 그런 모습이 보인다. 이슬조차 메말라 버린 이들도 있다. 결과를 받아들였다지만 당장 활발한 모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뭐라도 할 계획을 세운다.


이 다섯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 반복되면 정신력이 강해지고 가끔은 어떤 단계는 건너뛰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은 성숙해지는 것이다. 나도 계속 성숙해진다. 이런 거절들이 나를 단련시킨다. 마치 철사장으로 손을 단련하듯이 말이다. 그래도 곱씹어보면 씁쓸한 건 왜일까. 한 번도 대충인 적이 없었기 때문인가. 돌이켜보면 늘 결과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과정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건가 보다. 내게 거절을 맛보게 한 모든 분이 한 명씩 떠오른다. 그분들에게 멀리서나마 텔레파시를 통해 이소라의 노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보내본다. 


난 너에게 편지를 써 모든 걸 말하겠어 

변함없는 마음을 적어주겠어 


난 저 별에게 다짐했어 내 모든 걸 다 걸겠어 

끝도 없는 사랑을 보여주겠어 


더 외로워 너를 이렇게 안으면 

너를 내 꿈에 안으면 깨워줘 

이렇게 그리운 걸 울고 싶은 걸 

난 괴로워 네가 나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웃고 사랑을 말하고 그렇게 싫어해 날 


너에게 편지를 써 내 모든 걸 말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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