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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r 05. 2020

연말정산으로 깨달은 것

내 막연한 꿈 중 하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 세상 떠날 때 빈손으로 간다지만 살아있을 때 조금은 풍족함을 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억만장자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굶지 않는 것을 보며 나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의 돈 욕심은 끝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벌고 싶고 덜 잃고 싶은 게 돈이다. 


성과급이나 ‘떡값’이라 불리는 명절 상여금을 받을 때가 되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움이 더해지기에 설레고 신나지만, ‘쫄리는’ 맛은 없다. 똥줄이 탄다는 말처럼 약간 긴장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리고 결과는 승리로 끝날 때 엄청난 쾌감을 누릴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요소를 갖춘 것이 ‘연말정산’이다. 보너스냐, 아니면 세금 폭탄이냐. 이를 두고 펼쳐지는 정산 대결은 귀찮으면서도 돈을 벌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재미있다.


소비를 늘리되 카드보다는 현금 소비를 늘리고, 연금 저축, 주택청약 등 다양한 상품에 가입하며, 안경 매장과 교복 매장에 찾아가 영수증을 받아 이중 혜택을 누리는 등 다양한 정보수집으로 조금이라도 덜 세금을 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심지어 다니지 않는 교회나 절에 후원금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서류를 이것저것 제출해 계산했을 때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닌 돌려받는 쪽으로 결과가 나온 사람은 마치 2002 월드컵 4강 진출을 본 것처럼 환호한다. 받지 않더라도 내지 않는 사람도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며 이 얼마나 가슴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학생들이 중간고사 채점 결과를 공유하듯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결과보다 남의 결과를 더 궁금해한다.


연말정산을 하면서 한 번도 돌려받은 적이 없다며 툴툴대던 동료 한 분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꿀팁을 알려줬다. 첫째 아이를 많이 낳아라. 아이를 많이 낳아 인적공제를 많이 받으라는 것이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아이로 공제를 받으라니. 요새는 출산에 대해 회의적인 가정도 많은데 말이다. 


둘째 고령의 부모를 모셔라. 인적공제는 물론 추가로 경로우대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물론 조부모, 외조부모도 안 계신 나는 받기 어려운 혜택이다. 남은 직계존속이라곤 엄마밖에 없다.


지금 당장 내가 큰 혜택을 받기엔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많은 가족 구성원과 걱정 없이 누릴 것 누리며 살고 싶은 게 바람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려면 필요한 게 많다. 그래도 어린 자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게. 자식들을 조금 더 챙겨줄 수 있는 떳떳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 아닌가 싶다. 건강하지 않으면 직장에 다닐 수 없고 돈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라도 어린 자식과 젊은 부모 모두 부모의 건강을 서로 바라지 않겠는가.


하지만 건강은 젊은 부모에게만 필요한 조건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큰 자식들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돈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연말정산에서라도 더 많이 공제받도록 하려면 나이가 든 부모도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자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떳떳하게 고개 들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엄마, 나중에 자식들 연말정산에 도움 되려면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아. 오래 살아야 나중에 자식들 연말정산 때 세금 공제가 많이 될 거 아니야.”


내 말에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연말정산 때문에 오래 살면 돈 더 들지. 자식들은 부모 뒤치다꺼리하느라 돈 더 든다고 싫어해. 그냥 사는 대로 사는 게 나아.”


그 말을 듣고 다 큰 자식은 부모의 건강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자식들이 늙은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스릴 넘치게만 느껴졌던 연말정산이 괜히 얄밉게 느껴졌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찾아오는 암울한 결말이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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