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Apr 10. 2023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

핼러윈 참사 이후 나타난 남녀 갈등

지난 2022년 10월 29일 밤 핼러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많은 이가 이태원에 모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가 조금씩 완화됨에 따라 근 2~3년간 이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지 못한 탓에 인산인해를 이룬 이태원의 분위기는 더 뜨거웠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가 모여도 우려만 있을 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참사였다.


이런 응급 상황에서 경찰과 구급대원만으로는 벅차 일반 시민까지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리고자 CPR(심폐소생술,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했다. 인터넷 뉴스와 커뮤니티에는 남성이 여성을 CPR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올라왔다. 이 모습에 대한 여러 의견이 엇갈렸다. 이성을 CPR로 회생시켰는데 이후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는 전례가 있어 자신은 절대 하지 않을 거란 의견, 위급 상황에서 가리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견 등 안타까운 사고에 세상을 떠난 이를 향한 애도의 분위기는 남녀 싸움으로 바뀌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남녀 갈등의 골이 깊다. 오래전부터 정치, 사회, 문화 등 곳곳에 퍼졌다. 이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를 콕 짚을 수 없겠지만 여러 개의 이유 중 하나는 ‘이성 혐오’다. 왜 이렇게 서로를 미워할까. 나는 그 원인 중 하나로 페미니즘, 정확히 말하자면 페미니즘에 대한 서로의 이해 부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상 이해하는 남녀 갈등과 이와 관련된 계층, 권위 등의 문제와 관련한 페미니즘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은 혐오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주관적인 의견을 넣으려 하면 특정 성에 대한 편 가르기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성 갈등을 완화하고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해서는 페미니즘과 문제 해결을 고민해야 한다. 이 글 또한 남과 여 어느 한쪽의 입장에 무게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을 논하기 전에 우선 성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남성스러움, 여성스러움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차이는 무엇일까? 성은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신체적 차이를 말하는 성(sex)과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 젠더(gender)로 구분된다. 젠더는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여성, 남성, 나아가 여성성, 남성성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라 특정한 규범을 따르도록 하는 사회적 분류 체계도 뜻한다.


이런 사회과학적인 분석과 다르게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박힌 성의 다름에 대한 생각은 단순하면서 확고하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을 이유로 들며 어릴 때부터 젠더에 대한 정체감이 형성(젠더 사회화)된다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주장이 어린 나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남근을 예로 들며 남자 위주로 주장이 이루어졌다는 점 등 때문에 그의 주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은 성에 대한 정체감이 어릴 때부터 조성되어 있고 바뀌지 않는 때가 많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자리잡힌 그 관념은 영향력이 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녀 간의 차이와 갈등이 일어났고 페미니즘은 이런 문제에서 발생했다.


페미니즘의 문제 제기는 크게 세 가지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여성은 어떠한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 제기를 위해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단순히 여성의 위치와 경험은 남성과 다르다는 차이를 말하는 주장 외에도 이성 간 불평등에 대해 말하는 주장도 있다. 이를 ‘젠더 불평등론’이라고 하며 남녀가 행사할 수 있는 지위, 권력 등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남자의 역할이 여자 역할보다 가치 있고 잘 보상받는다는 것이다.


젠더 불평등에 대해서는 성향이 나뉘는데 하나는 젠더 불평등이 생기는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다. 모든 인간에게 이성, 도덕적 행위, 자아실현의 능력이라는 특성이 있고 이는 보장되어야 하고 성에 의한 불평등은 자연적 근거 없는 사회적 구성이기에 국가와 대중의 조직적 호소로 평등한 사회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불평등을 넘어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과 학대받는다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보다 감성적인 이들이 말하는 대표적인 억압과 학대의 예는 가부장제와 신체, 언어적 폭력 등이 있으며 남성이 여성 착취로 이득을 취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절대적으로 긍정적 가치를 가지는데 위의 문제 때문에 평가절하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학문과 이론상으로만 접근하면 우리나라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가깝다. 하지만 더 자세히 보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조금 결이 다르다. 여성의 권위 상승 주장을 넘어 남성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혐오는 단지 우리나라 페미니즘, 즉 여성 문제만이 아니라 남성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도 늘고 있다. 이는 ‘김치녀’, ‘한남충’ 등 서로의 성별을 부르는 특정 명칭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두드러진다.


첫째로 우리나라는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 남성 혐오’로 여겨지는 데도 미디어와 커뮤니티의 영향이 있었다. 언론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비롯한 여성 혐오 범죄, 미투(Me too) 운동 등 각종 사건 사고의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여성의 주의를 필요로 하거나 성차별 문제 등 각종 프레임을 씌워 보도했다. 사고와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의 신상, 경력, 정치적 성향 등 신변잡기에 파고드는 모습은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했다. 여기에 루머와 가짜 뉴스가 늘어났고 커뮤니티가 이를 나르고 쟁점화하며 남녀 갈등과 혐오 문제는 더욱 커졌다. 커뮤니티는 남녀 사이의 여러 문제의 원인을 여자와 남자 특정 성의 책임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나 특정 기득권의 권력 문제로 보는 일은 적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갈등이 정치적으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여와 야, 좌와 우를 나누는데도 남녀 갈등이 배태되어 있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거나 선거철만 되면 이를 활용하는 무리 때문에 남녀 간 갈등은 더 심해졌다. 


둘째로 우리나라는 지독한 경쟁과 개인의 욕망에 따른 부작용이 심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이 욕망은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경쟁의 연속인 현대 사회에서 성공과 기득권에 대한 욕망은 저마다 매우 크다. 남성과 여성 나눌 것 없이 자신의 권한을 요구해야 하며 이것이 보장,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공정’을 내세우며 자신의 혐오를 정당화하고 포장한다. 이는 세태에 대한 부정과 비난에 그칠 뿐 일말의 변화를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갈등만 커질 뿐이다. 자신이 피해 보는 것이 커 보이기에 이성 간의 갈등과 혐오는 더 커진다. 남성과 여성의 상반된 입장은 대개 이러하다. 


우리나라 남성은 남성에 대한 사회의 지지와 지원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토로한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군대’ 문제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의무복무 때문에 2년 정도의 젊음의 시간을 날린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위험하고 힘든 일은 남성이 도맡아야 하며 여성은 기회와 권한 상승 요구에 비해 책임을 회피한다고 말한다. 여성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받는 것이 많다고 말한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리천장이 있음을 지적한다. 아직도 남성이 더 존중받으며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적다는 것이다. 남과 여 모두 서로를 집단이기주의로 바라보기에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남성의 반페미니즘 경향은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갈 10~30대에도 있고 더 클 가능성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남녀 갈등 해소를 위해 필요한 것과 이상적 페미니즘

막연하고 이상적인 생각일 수 있으나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남녀 간 혐오와 갈등은 풀어야 하는 숙제다. 돌이켜보면 표현만 자유롭게 하지 못했을 뿐 젠더 평등에 관한 갈등은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였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위상이 지금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유교 사상을 우대하면서 남녀 간 위계와 인식이 바뀌고 이후 신여성이 등장했을 때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박대하는 일도 많았다고 하니 그 시간 속 갈등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분야가 너무 많아졌다. 빠르게 해결하기란 어렵겠지만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조금씩 봉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첫 번째는 쟁점의 구체화다. 페미니즘과 연관된 세계적인 여성운동에서 말하는 쟁점은 여성 빈곤 분담의 지속화와 증가, 여성에 대한 폭력, 권력과 의사 결정 공유에 나타나는 남녀 간 불평등,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소녀에 대한 지속적인 차별과 인권침해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놓고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다른 세계 운동에 비해 겉핥기로만 내세우며 서로에 대한 비난에 치우친 모습이다. 어떠한 문제라도 갈등은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일차원적인 싸움으로 가는 게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때다.


두 번째는 인식의 변화다. 페미니즘은 차별 때문에 나온 주장이다. 차별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한 사회에서 모여 살지만, 인간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개성, 생각, 자라고 지금 사는 환경 모든 것이 다르다. 이를 존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혐오는 특정한 일부에서 비롯됐다. 특정 입장에 대해 모두 그렇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만들고 그렇게 부추겨진 싸움에 놀아난다. 미디어를 올바르게 분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처럼 의견에 휩쓸리기보다 구별할 줄 아는 눈과 귀를 갖춰야 한다.


또한 ‘나는 그렇지 않아’라는 안일함에 빠져서도 안 된다. 이성 간에 서로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런 사람들과 기존의 차별을 줄여나가려고 한다면. 목소리를 내는 만큼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감정이 이성보다 커선 안 된다. 감정이 커지면 여러 젠더 문제들이 문제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넘어 혐오로 이해된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계속 번성하며 살아가기에 남과 여 모두 협력자로 볼 수 있다. 특정 성이 이득을 많이 봐서 누군가 피해를 본다는 인식에 갇혀 있지 말고 물질주의, 이기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또한 서로의 시선을 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의 만들어진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건강한 경쟁이 이루기 위해 내 몫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로 자기 몫을 해내면 피해를 주거나 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세대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갈등이 혐오 문제로 번진 것에 현재만을 탓할 수 없다. 오래전부터 있었고 은연중에 있었던 문제다. 중년 세대가 지금 젊은 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자신들에게 있던 이루지 못한 욕망을 지금의 자식 세대에게 기대한 것도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세대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자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현재를 사는 모든 세대가 남녀 갈등 문제와 원인에 대해 주의 깊게 바라보고 고민해야 한다. 이는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란 것을 직시해야 한다.


세 번째는 표현 방식의 변화다. 특정 성의 강함과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여성의 강함을 남성의 약함이나 능력의 모자람으로 표현하거나 여성보다 남성을 우월하게 표현하는 것 등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서로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표현보다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해야 하며 이에 따른 표현 방식도 변화를 줘야 한다. 사회 또한 이런 표현 방식과 갈등을 부추기는 여러 환경과 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앞서 계속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은 서로를 향한 혐오로 변질되어 있다. 원인 제공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형태가 아닌 원래 추구했던 것, 불평등에서 발생한 여성의 상황, 권위 등의 개선을 위한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


여성 해방을 위해 일어난 것이 페미니즘이지만 여성의 해방과 남성의 해방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성에 이득이 쥐어졌을 때보다 서로가 협력하고 함께 누리려고 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말하고 생각했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남녀 갈등 해소의 첫걸음이며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 문헌>

Anthony Giddens, 『현대 사회학』, 을유문화사, 2007

GEORGE RITZER, 『현대 사회학 이론과 그 고전적 뿌리』, 박영사, 2010

매거진의 이전글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