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준비하는 일이 잘 안 풀리면 마음이 공허해진다. 예전에는 슬픔과 분노가 먼저 찾아왔지만, 연속된 실패를 경험하고 인생에서 항상 성공하기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부터 허무함을 느끼기보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날이 훨씬 더 많아졌다. 성격이 쿨해진 것 같진 않고 너무나 많은 실패에 감정이 메말라버리고 무뎌진 것 같다.
큰 기대를 하며 1년간 준비한 일을 망쳤다. 모든 것을 날린 기분이었다. 미리 세운 남은 2022년 계획이 통째로 날아갔다. 이제 아직 남은 2022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쉬려고 하는데 오히려 불편했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쉬는 법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 깊이 느껴졌다.
나는 쉼을 불필요하게 여겼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좋다고 지금껏 생각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계속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내 금방 잊어버리는 특성과도 관련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시험 기간에 열심히 공부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면 공부했던 내용을 머리에서 훌훌 턴다. 나중에 써먹으려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반복했기 때문에 일부러 쉬지 않으려 했다. 설령 잠깐 쉬더라도 나중에 다시 일을 손에 잡았을 때 공백기 없이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이유는 도태되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와 경쟁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싸움에서 밀리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게임의 부작용인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꾸준히 자기 능력과 경험치를 키우고 좋은 아이템을 구하는 것처럼. 계속 성장하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다. 이것을 게으름이라 여겼고 게으름이 몸에 익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기에 이를 피하고자 더 나를 채찍질했다. 흔히 말하는 ‘일 중독’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한다고 성과는 없었다. 그려지지 않은 레인 위를 달리며 보이지 않는 결승점을 찾아 앞으로만 달렸다.
그렇다고 마냥 쉬기만 하면 안 되지만 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쉬는 것이 꼭 게으른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도 연습이나 경기를 한 후 쉰다. 제 컨디션을 찾기 위해서 무리하는 것을 피하며 회복하는 것이다. 쉬는 것을 꼭 자제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게으름이라고 여겼다. 나는 쉼의 필요성을 알아야 했고 몸과 정신을 아예 놓아버리고 쉬는 것이 아닌 건강히 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일단 쉬었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한번 쉬는 경험을 가지려고 했다. 이래도 되는지 불안한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생각을 내려놓고 쉬려고 했다. 가까운 거리일지라도 여행을 가고, 그동안 참았던 게임을 하고, 못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고. 그러는 동안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것 같았다. 기분 전환 그 이상의 것을 얻는 기분이었다.
소위 ‘악’이나 ‘독기’ 같은 정신력을 말하며 참는 이도 있겠지만 때에 따른 조절도 필요하다. 내가 지쳤거나 지쳐가는 것을 모르다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부하가 일어나 아무것도 못하거나 본래보다 못한 상태가 되는 것보다 충분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꾸준히 일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겨내는 것만큼 내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시기에 지치거나 다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보다 조금 늦더라도 완급조절로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낫다.
정신력을 떠올리거나 이겨내겠다는 마음을 이미 먹는 사람이라면 이는 어느 순간이든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적절한 시기에 휴식을 가진다면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한을 정하지 않았지만, 재충전을 마치면 다시 풀어놓은 고삐를 당길 생각이다. 쫓기며 사는 기분을 내려놓고 안정을 찾은 것이 다행이다. 또 앞만 보다 달린다면 그때는 적절한 속도 조절과 휴식을 취해야겠다. 이전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