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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Feb 06. 2023

삼행시의 기억

삼행시를 시라고 할 수 있을까? 시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삼행시는 시에서 찾을 수 있는 운율과 표현, 감성이 부족할 때가 많다. 운에 맞춰 바로 시를 짓는 구성도 독특해 정통적인 시라기보다는 대개 방송이나 사석에서 순발력과 센스를 점검하는 장치로 많이 활용된다. 적용할 단어가 별로 없는 글자가 운에 있을 때는 당황해 작시를 멈추거나 자음동화 등의 방법으로 시를 잇거나 아예 우리말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시를 완성한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대개 재치로 인정하며 넘어간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 삼행시를 잘 짓는 사람은 개그맨 박명수와 조세호다. 그중 박명수의 ‘아나바다’, 조세호의 ‘코딱지’ 삼행시는 재치가 번뜩이는 삼행시라고 생각한다. 그 감동을 한번 느껴보자.


<아나바다>

아: 아버지

나: 나를 낳으시고

바: 바지 적삼

다: 다 적시셨네.


<코딱지>

코: 코브라를 잡기 위해서는

딱: 딱 전기로 잡아야죠.

지: 지지직직직직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즐기는 이런 삼행시와 다른 형식을 표방하는 삼행시도 존재한다. 이는 전자를 부정하는 삼행시다. 물론 공인된 것은 아니다. 특정인의 주장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삼행시를 즐겨하던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삼행시를 하나의 시 장르로 여기는 분이었고 앞서 말한 삼행시를 혐오했다. 삼행시의 매력과 가치를 파괴한다는 이유였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자신의 독특한 규칙을 적용해 학생들에게 삼행시를 쓰게 했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1. 삼행시보다 더 많은 운의 다행시나 적은 단행시도 인정한다.

2. 한 운에는 최대한 하나의 내용이나 문장이 담겨야 한다. 두 번째 운으로 내용은 이어져야 하나 글자를 이어지게 하려고 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사과’로 이행시를 한다고 할 때 


사: 사과보다 나는 

과: 과자를 좋아한다.


‘나는’을 ‘사과보다’ 앞에 쓸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뒤에 넣어 두 번째 운에 이어지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3. 자음동화 등의 방법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나 어쩔 수 없는 경우 사용할 수 있다.

4. 최대한 다양한 단어를 구상하고 구사해야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단어를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나’로 시작한다고 ‘나는’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5. 최대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허무맹랑하게 끝나는 시를 만들지 말고 제시어와 관련이 있든 없든 내용이 있는 시를 만들라는 것이다.


아무튼 수업 진행보다 삼행시 진행을 더 중요시했던 괴짜 선생님 덕분에 삼행시를 많이 쓰게 됐다. 수험 시험이 다가올수록 불안도 커지는 그때의 학생들에게는 전혀 유익하지 않은 시간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잿밥에 관심이 많아 크게 개의치 않았고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음에 좋게 받아들였다. 어휘력 발달에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도 일반적으로 하는 삼행시를 선호하지 않게 됐다. 부족한 능력 탓에 매번 그런 방식으로 쓰지는 못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그 시절 수업 노트에 적은 삼행시를 몇 가지 공개한다.


<금주 목요일 수능>

금: 금시초문일세

주: 주현미가 남자였다는 소문은

목: 목젖이 많이 나와 있긴 하지만

요: 요리 봐도 저리 봐도 여자인데

일: 일단 한 번 수사해보지

수: 수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능: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들을 거야, 자네는.


<일교시 언어>

일: 일본

교: 교토

시: 시장에 갔다.

언: 언제?

어: 어제


지금도 나는 삼행시 짓기를 가끔 하고 있다. 늘 하던 때보다 실력이 더 떨어졌지만 사내 삼행시 이벤트에서 쏠쏠하게 상을 타는 등 종종 재미를 보고 있다. 재빠르게 아름다운 삼행시를 만드는 것이 삼행시 시인으로서 최상의 모습이겠지만 더 나은 시를 만들고자 고뇌를 거듭하며 색다른 시를 만들었을 때 쾌감도 매력적인 요소이자 우리의 능력을 더 향상하는 방법이다. 센스쟁이가 되고 싶은 이여, 짧은 시간 머리 회전이 필요한 이여, 흥미가 생긴다면 한번 삼행시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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