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퇴짜 후에 겨우 브런치 활동을 한 지 어언 3년, 수많은 실력 있는 작가들 틈에서 부족한 글을 썼다. 휘갈겼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내가 봐도 형편없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에 글을 올리자마자 뒤도 보지 않고 재빨리 도망갔다.
‘어떻게 쓰는 글인가’라는 갈래는 지금 내가 구성해 놓은 것 중 가장 중구난방으로 글이 모여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글, 써 보고 싶은 글 등을 한군데 정리했기 때문이다. 각종 자료를 참고하며 적는 열의를 보인 글도 있지만, 머릿속에 있는 편협한 시각으로 검토와 수정 없이 내 생각만 오만방자하게 적은 글도 있다.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이 글들을 나는 꾸준히 적고 있다. 도대체 이런 글들은 어떻게 쓰는 걸까? 나도 궁금해 성찰해보는 글을 적고자 한다.
제목을 정한 이유부터 생각해보자면 나는 ‘어떻게 쓰는 글’에 여러 의미를 넣고자 했다. 하나는 글을 쓰는 ‘이유’와 관련 있다. 왜, 어찌하여 이런 글을 적게 됐는가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도 이유가 나뉜다.
첫째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글을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남에게 글을 보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생각을 정리할 매개에 대한 필요가 더 비중이 컸다. 수려한 글솜씨, 뛰어난 논리가 있지 않지만, 머리에 드는 온갖 생각을 조금이라도 정리해야 했다. 무식한 게 잘못된 신념만 강하고,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글을 쓰고 있다.
둘째로 글이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내 자존감은 변덕이 심하다. 최상에 있다가 순식간에 최하로 곤두박질친다. 최악의 순간마다 드는 생각은 ‘뭐라도 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가장 빠르게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글이었다. 어려운 대상이면서도 만만했다. 잘 쓰는 것도 아니다. 학교 다닐 때 논술 수업에 글 못 쓴다며 창피당하기 일쑤였다. 일기를 비롯한 시간 나면 글을 적던 버릇은 그래도 버리지 않았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을 때 느끼는 나름의 만족감에 그랬던 것 같다.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일단 쓰고 본다. 그렇게 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보다 내 상태가 양호하다.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자기 단련인 셈이다.
‘어떻게 쓰는 글’의 또 다른 의미는 글의 ‘쓰임’과 관련 있다. 첫째로 이 글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Use’와 관련 있다. 나름의 깨달음과 적용이 있는 글이 많은데 이를 토대로 어떻게 삶을 살고 상황에 대응할 것인지 말하고자 했다. ‘개똥철학’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정도로 편견과 아집이 있지만, 이를 본받든지 이와 다르게 생각하든지 생각할 거리를 나와 글 읽는 이 모두에게 던지고 싶었다.
둘째로 ‘Write’와 관련 있다. 이는 내 글에 대한 자조가 섞여 있다. “어떻게 이런 글이 쓸 수 있지?” 냉소적인 놀람 표현을 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충만한 이 공간에서 나는 결코 잘 썼다고 할 수 없는 글이라는 가면을 쓴 똥을 마음껏 싸고 있다. 나중에 잊힐 권리를 주장하며 모두 삭제하는 날이 올지 모르지만, 아직 그 정도의 자괴감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남들은 느끼는데 내가 모르는 철면피를 두른 것일 수도 있겠다.
위에 있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꾸미고자 하는 생각이 컸다. 길게 쓴 이유를 요약해 말하자면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어떤 이유와 방법이든 글이 쓰고 싶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다른 갈래는 글이 고갈되는 날이 올수 있겠지만 이 ‘어떻게 쓰는 글인가’는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구린내가 나고 눈살 찌푸리는 글이 보이더라도 꾸준히 글 올리는 나름의 성실함을 칭찬하며 격려의 시선으로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