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 살면서 나도 모르게 ‘확찐자’가 되었다는 것을 건강검진 덕분에 알게 됐다. 십의 자리가 바뀐 몸무게를 보며 계속 이렇게 살면 인생 몸무게 기록을 경신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밤마다 동네를 10km 가까이 달렸다. 식사량도 조금씩 줄였다. 그렇게 4~5개월을 보내니 10kg 가까이 체중 감량을 할 수 있었다.
살이 빠진 것에 대해 기뻐했던 것은 잠시였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좋아 보인다는 말이 아닌 왜소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부정했지만, 나의 팔랑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야위어 보였다. 다이어트의 부작용인가. 하지만 음식을 먹자니 살이 찔 것 같고 더 달리자니 몸과 얼굴이 촛농처럼 녹아내릴 것 같아서 고심 끝에 헬스장에 가기로 했다. 조금은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운동 한번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거액을 내고 PT까지 신청했다. 꾸준히 달리면서 체력이 조금 좋아져 헬스장 운동에 금방 적응할 줄 알았건만. 헬스장에 갈 때는 힘차게 가지만 돌아올 때는 다리를 질질 끌고 귀소본능에 의지하며 돌아오기를 반복 중이다.
나는 ‘헬린이’다. 헬스라곤 수능 시험을 마치고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잠깐 했던 것, 군대에서 매일 밤 컵라면을 먹다 찐 살을 빼기 위해 했던 것 말고는 경험이 전혀 없다. 군대에서 후임병의 도움을 받은 것 말고는 내게 운동하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운동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곁눈질로 주변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따라 했다. 그래도 그때는 젊은 20대의 체력을 믿고 막 나갔다. 지쳐도 금방 회복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30대 아저씨. 비루한 몸과 체력으로는 PT 선생님의 운동이 벅찼다. 머리는 한 개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하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됐다. 그래도 아직 끝까지 해야겠다는 마음이 뿌리박혀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있다.
건강을 위해, 자신을 가꾸기 위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운동을 한다. 점점 운동하는 사람 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 웬만한 건물마다 헬스장이 하나씩 있고 자기 근육과 몸매를 과시하는 사람도 많다. 안 보고 싶어도 눈에 띌 수밖에 없어 힐끗 보게 된다. 그 외에도 어떤 운동을 하는지 얼마나 무겁게 드는지 보게 되는데 나보다 왜소해 보이는 사람이 가뿐히 무거운 것을 드는 모습을 보며 내 근력을 자책하게 된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안 될까?’ 자신감이 바닥을 친다.
비교가 일상인 현대 사회다. 모든 게 경쟁이며 그만큼 남을 의식한다. 현실에서 비교 외에 온라인에서도 비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각종 SNS에서 많은 사람이 바디 프로필을 위해 운동했다며 그간 고생의 흔적이 담긴 몸을 사진에 담아 올린다. 그와 상반된 내 모습을 보며 위축되는 나를 발견한다.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질병의 원인 중 하나로 SNS가 거론된다. 또 SNS의 악영향으로 많은 이가 비교와 우울증을 꼽는다. SNS를 보면 나만 못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매일 힘들게 일하고 공부하며 살고,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남들은 달라 보인다. 해외 여행지에 가서 여유로운 모습이 담긴 사진, 각종 명품을 휘두르며 재력을 과시하는 사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얼굴과 몸매가 담긴 사진 등은 쉴 새 없이 올라온다. ‘나는 왜 저들처럼 못 사는가?’ 고민하고 비교하면서 점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우울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헬스장에서 처참히 조져지면서 배운 것이 있다. 바로 ‘남과 비교하지 말자’는 것이다. 남의 정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겠지만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남이 아닌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경쟁하기도 바쁜 사람이다. 남만 지켜보고 있다간 정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너무 급하면 안 되겠지만 따라가도록 해야 하는데 좌절감에 빠져있다면 하고자 하는 의욕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 충분히 나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남과 비교하며 좋지 않은 열등감에 빠져 지낼 때가 많았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이뤄내는 게 없어 보일 때 내가 아닌 주변 환경만 탓했다. 그래서 남는 것은 더 부정적인 말과 성격으로 덮인 나였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한 공간에서 운동하면 남의 모습이 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건 순간적인 일이다. 모두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 모습을 보며 점점 생각을 바꾸게 됐다. 남이 보는 나, 남과 비교하는 나가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내가 되기로.
하루아침에 내 몸이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그런 바람은 요행일 뿐이다. 하루 만에 가수 김종국처럼 될 수 없다. 하물며 헬스장의 많은 근육 남녀처럼 될 수도 없다. 이들도 오랜 시간 노력하면서 이뤄낸 것이다. 다행인 것은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경쟁과 비교의 상대로 바라봐야 하는 것은 남이 아닌 나다. 운동, 식사 수많은 유혹과 고통을 견디며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다.
이 여정과 깨달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몸짱’은 안 되더라도 건강한 몸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운동의 고통을 맛있다고 외치는 김종국처럼 되지는 못하겠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운동이 내 외적인 변화만이 아닌 내적인 변화를 이뤄줄 것 같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