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맞는 꿈을 꿨다. 무슨 연유로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꿈속에서나마 오랜만에 맛보는 엉덩이 찜질에 추억 아닌 추억에 잠겼다. 나와 함께 같은 반 친구들을 몽둥이로 두들기던 선생님 덕분에 문득 옛날 블로그 글이 떠올랐다. 그 글은 나보다 한참 선배인 분이 쓴 글로 학교 선생님들에게 맞았던 기록을 ‘전투력’이라는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글이었다.
선배님의 글에도 적혀 있었지만, 어떤 선생님은 자신만의 시그니처 무기가 있었고 체벌 방식도 남달랐다. 이는 학교 재학 중 어떤 선생님을 조심해야 하는지 확인하는 참고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내가 재학생일 때는 그 글과 달리 성격과 행동이 바뀐 선생님도 있었다. 마치 주식 종목이 몇 년 전에는 백 원대 가격이었던 게 만 원짜리로 떡상하거나 그 반대로 떡락한 것처럼 말이다. 글 글은 새로운 정보가 있는 책이 나오면 보존서고에 들어가는 책처럼 갱신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억 난 김에 그 글을 다시 찾아봤으나 현재 비공개로 바뀌어 있어 볼 수 없었다. 사립학교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전근이 거의 없어 내가 졸업한 후에도 많은 후배가 그 글에 댓글을 남겼고 간혹 선생님들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이 있어 나중에 들어올 후배들에게 영향을 줄까 우려되어 글을 숨기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나는 그 글에 대해 나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선생님들의 과거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고 공감했던 기억이 더 크다. 마치 부모님의 앨범을 보거나 젊은 시절을 듣고 상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선생님도, 선배님도, 나도 늙는다. 세월이 흐른 만큼 학교의 정경, 분위기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땐 그랬지’라고 기억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두발, 복장 상태도 다 바뀌고 교칙도 흐름에 따라 바뀌었을 텐데 지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안 바뀌었을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도 다 바뀌었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의 관점에서 그 글을 읽게 된다면 그 글 속의 인물이 퇴직해서 누군지 모를 수도 있을 테고 지금과 다른 모습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세대 차이를 느낄 거리가 많으니 그 글을 후배들이 읽는다면 재미있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력으로 빗댄 그 글이 내게도 결코 우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폭력에 가까운 체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모교가 아니더라도 나와 비슷한 또래를 비롯한 그 윗세대들만 하더라도 심하게 맞은 사람들은 “길 지나가다 만나면 죽인다.”라고 말하며 선생님에 대해 이를 가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체벌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과한 선생님도 있었던 시대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워낙 체벌에 익숙한 세대였으니 비정상적으로 체벌을 웃으며 받아들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경악할 일인지도 모르지만 잘못하면 맞는 것이 당연하며, 맞더라도 장난이 섞인 체벌이라면 오히려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수업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킹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뭐가 됐든 선생님은 학생을 때릴 권한이 있다고 받아들였다. 물론 정도가 심하면 난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매 맞는 걸로 어머니가 학교에 방문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치맛바람으로 여기거나 당사자가 창피하게 생각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피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환경에서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지금이 맞고 과거가 틀린 것일 수도 있겠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어머니들의 관심은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소한 것에도 소음이 커지는 것 같다. 가장 폐쇄적, 수직적인 사회이자 강인한 정신력을 위해 엄격한 군기를 요구하고는 군대도 엄마의 입김이 작용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게다가 교권이 바닥이라거나 촉법소년과 관련된 문제라거나 다양한 학교 및 청소년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오히려 학생이 선생님을 때리거나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는 등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자주 들려오는 소식이다. 일부 불량 청소년들로 지금 학생들을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체벌 금지의 역효과로 문제가 커진 것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체벌이 있던 당시에 불량 청소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체벌이 교내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어쨌거나 체벌이 있던 그때는 강압에 길들었든 우러나는 마음으로든 아니면 은연중이든 지금 이상으로 선생님의 권한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가 필요하다!”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체벌이 불량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고 교권을 바로 잡는 유일 수단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엄하게, 내가 한창 학교에 다녔던 시절보다는 약하게 밸런스 조절을 해서 교권을 존중하는 분위기와 교권을 바로 세울 방법이 필요하다. 아무리 수직보다 수평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라지만 먼저 태어나 인생에 필요한 지식을 전수하는 스승이 쩔쩔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학교 다녔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순간의 과거 회상일 수도 있지만 요즘 자주 일어나는 청소년들의 학교 사건, 사고가 들리기 때문에 떠오르기도 하는 것 같다. 이제 나는 학교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학교생활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또 후배 세대들이 학교생활을 경험하는 것을 지켜볼 사람으로서 아무쪼록 좋은 방향으로 학교와 교내 문화, 분위기가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