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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19. 2022

나와 커피

뜻밖의 변절

군 복무를 할 때 많은 사람이 입이 심심할 때 찾는 것은 커피였다. 그렇다고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고급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아니었다. 자판기 커피였다. 하찮아 보이지만 자판기 앞은 북새통이 아닐 때가 없었다. 특히 흡연자들은 담배를 태울 때마다 한 손에는 담배, 다른 손에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꼭 들고 있었다.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종종 자판기 커피를 즐겼다. 커피보다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소소한 재미가 좋았다. 부대 안 커피 자판기는 백 원짜리 동전 한두 개로 마실 수 있었다. 블랙, 밀크, 설탕 세 가지의 간단한 메뉴는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었다. 계절 음식처럼 등장하던 딸기, 바닐라 등 이름을 가진 라테도 인기 메뉴였다. 소대원과 상대 몫까지 커피를 사는 내기를 하기도 했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커피는 함께했다. 휴일에 침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여가를 즐길 때도 커피는 좋은 친구였다.


프랜차이즈 커피가 점점 늘어나면서 커피는 다방에서 즐기는 음료 이미지가 아닌 식후 즐기는 디저트, 소통 활동의 아이템 같은 이미지로 바뀌었다. (내게 다방 하면 이미지가 조금 퇴폐적이고 불순하게 느껴졌는데 그렇게 된 것은 미디어의 영향이 클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커피를 마시면 잠이 들지 못한다는 이유로 입에 댄 적이 없었고 나도 쓰디쓴 커피 맛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에 커피는 나와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더위 사냥’이라는 아이스크림 덕분에 커피믹스 맛을 조금이나마 체험했을 뿐 커피를 처음 마신 때는 성인이 된 이후였다. 커피를 그것도 매장 안에서 마셔본 적이 없었기에 적응 못 하는 나를 주변에서 신기하게 봤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한 거지만 나 역시 창피했고 커피는 여전히 어색했다. 그런 내게 자판기 커피가 그 거리감을 좁혀준 존재였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대학을 다니다 군에 입대하고 무릎을 다쳐 연골 제거 수술을 받았다. 군 병원에서 민간 병원으로 진찰받고 오라고 외출을 허가해줘서 나는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신이 났다. 갑갑한 군에서 벗어나 서울 구경을 한다는 것에 설렜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 후 나는 카페를 찾았다. 한 카페에 들어가서 든 생각은 ‘왜 이리 복잡한가?’였다. 뭘 주문해야 할지 몰랐다. 눈에 띄는 이름을 주문하자 직원은 ‘Tall’과 ‘Grande’ 중 크기를 고르라고 말했다. 그다음에는 시나몬 가루와 휘핑크림을 넣을지 물었다. 뭔지 몰라 다 넣어 달라 말했다. 주문을 마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회에서 만난 커피의 느낌은 달랐다. 부대 자판기 커피는 동네 친구처럼 느껴졌다면 전문점 커피는 유명 연예인 같았다. 전문점의 커피는 내게 부담스러웠다. 카페에서는 복잡한 과정을 겪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커피 한 잔 가격이 한 끼 식사 그 이상이었다. 부대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커피 전문점은 재미를 만들어 파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커피를 많이 사 마시면 다이어리나 텀블러를 주기 시작했다. 이를 구하려 사람들이 길게 줄지었고 카페 분위기는 답답해졌다. 상품을 교환하고 나가는 사람의 모습에서 여유는 없었다. 커피에 얻는 한잔의 여유보다 상품, 수익이 우선인 주객전도의 모습이었다.


전역 후 나온 세상은 자판기보다 전문점 수가 많아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다. 친구 커피를 만나러 전문점에 가면 비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변해버린 친구의 모습에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 나도 자판기 커피보다 카페 커피를 찾는다. 커피믹스보다 오히려 아메리카노의 쓴맛에 길들여진 지 오래다. 자판기 앞보다 커피 전문점의 반위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자판기 커피는 건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또 맛을 음미할지도 모르면서 웬만하면 가격도 비싼 것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내가 변절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찝찝하다. 그냥 시대의 흐름을 탄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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