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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ug 25. 2022

동명이인과 중고 거래

중고 거래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희로애락을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의 바른 사람을 만나면 거래도 기분이 좋다. 태도가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언짢다. 사기 치는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난다. 물론 기분 나쁜 상황을 접하면 당시에는 당연히 불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땐 그랬지’라며 생각하는 사람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독특한 만남이 있었다. 동명이인과 거래였다. 장롱을 정리하다 낯선 가방을 찾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대학 시절에 산 가방이었다. 멋 부리고 싶어 산 크로스백이었는데 잘 맞지 않아 몇 번 쓰지도 못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체를 빨리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당시 비싸게 사서 너무 저렴하게 올리는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더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 중고 거래 매물로 올렸다. 며칠 지나 물건을 사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고 거래를 위해 계좌정보와 주소지를 나누다 서로 같은 이름인 것을 깨달았다. 성이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사람은 종종 있었지만, 성까지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내 이름이 흔히 보이는 이름이 아니었기에 신기했다. 


이름으로 장난치는 시기는 지났지만 나를 나타내고 나를 부르는 호칭인 이름이 튀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많이 사용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다. 남자아이의 대표 이름이었던 만큼 자주 볼 수 있었던 이름인 ‘철수’를 예를 들자면 성만 다를 뿐 철수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성도 같은 철수는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철수 본인은 물론 주변의 많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 있는 다른 철수를 보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이 독특한 이들이 우연히 같은 자리에 있으면 신기하게 여긴다. ‘황제’라는 이름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황제가 두 명이나 있다는 농담이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동명이인의 존재를 인지했던 것은 군대 훈련소에서 식사하러 가다 우연히 동명이인을 지나치면서, 또 자대 전입할 때 다른 중대에서 같은 이름의 사람이 전역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뿐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가입해 거래하는 곳에 같은 이름이 만나는 일이 과연 자주 일어날까. 반가운 마음에 본관을 물었는데 본관은 달랐다. 내 이름은 항렬을 따라 지은 이름이라 마지막 글자가 다 같아 본관도 같은 줄 알았다. 이름에 쓰인 한자가 궁금했지만, 너무 추궁하는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며칠 후 물건이 잘 도착했는지 잘 받았다는 연락이 왔고 조금은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자신이 좋지 않은 병(묻지 않고 자세히 말하지 않아 알 수는 없었다)에 걸렸고 투병 생활 끝에 이제 퇴원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격려밖에 없는 것 같아 다른 삶의 XXX는 열심히 살 테니 또 다른 XXX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내게도 하는 말이었다.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이 아팠다니 다른 사람이지만 내가 아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보자는 뜻으로 전했다.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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