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한파가 마치 고유명사 같았던 옛날과는 다르게 2022년 수능시험 날은 따뜻했다. 지금 내게는 그냥 1년 365일 중 하루일 뿐이지만 학교 다닐 무렵의 내게는 정말 미치게 기대하면서도 오지 않기를 바랐던 날이기도 했다. 빨리 끝내고 자유롭고 싶은 마음과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12년 초중고 교육과정을 마치고 어쩌면 그 결과를 보기 위한 결전의 날일 수도 있는 수능시험. 내 수능 시험의 기억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모든 수험생의 수능 전날까지 과정은 비슷할 것이다. 공부가 하루의 반 이상이었다. 연초만 하더라도 언제 수능 날이 올지 막연한 답답함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여름을 지나 가을의 선선함이 조금씩 느껴질 때는 조급함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리고 수능 전날. 수험표를 받고 일찍 하교했다. 시험장에 미리 가보라고 해서 친구들과 시험을 보게 될 학교에 찾아갔다. 인천의 명문고인 제물포고등학교였다. ‘학교가 다 같은 학교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찾아갔지만 늘 다니던 학교와 구조도 다르고 몸에 느껴지는 분위기도 달라 모든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보통의 수험생이라면 시험을 앞두고 지금껏 공부한 것을 정리하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잠을 청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전설적인 프로그램이 됐지만, 당시는 초창기 TV 프로그램이었던 MBC <무한도전>을 다시 보기로 봤다. 다시 본 에피소드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이곳저곳 행사를 돌다 연세대 축제에 가는 내용이었다. 연세대 학생들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년에는 저렇게 하겠다’라며 전의를 다졌다. 이때부터 망했다.
수능 당일, 이전 수능 시험보다는 따뜻한 편이었지만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날이 추웠다. 집의 찬 공기가 썩 좋지 않았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액상 형태의 우황청심원을 먹었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다. 잘 다녀오라는 엄마를 뒤로하고 친구 아빠 차를 얻어 타고 학교 근처에서 내려 친구들과 함께 시험장에 갔다. 학교 앞에는 선생님과 후배 학생들이 응원을 나왔는데 뉴스에서 봤던 만큼 요란하게 응원하지 않았다. 건네주는 사탕 몇 개만 받아서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을 찾아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만 하더라도 마음에 동요는 없었다. 하지만 종이 울리고 첫 교시 언어 듣기 평가가 시작됐을 때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더니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렸다. 가슴의 두근거림은 없어 이것이 긴장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멍한 상황을 이겨내려 애쓰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녹음 내용이 다 끝난 때였다. 실패를 직감했다. 울고 싶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정신이 무너진 상태여서 다음 시험도 처참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하는데 보온 도시락이 그렇게 차디찰 수가 없었다. 밥맛도 없고 소화도 안 됐다. 남은 시간이라도 잘 보자며 스스로 다독였지만 막막하고 참담했다. 그렇게 마지막 교시까지 마치고 밖을 나오니 해는 모습을 숨기고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홀가분함을 느꼈지만 순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터덜터덜 집에 오는 길에 눈송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내 신세가 더 처량하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먼저 내게 건넨 말은 “시험 잘 봤냐.”, “수고했다.” 이런 말이 아닌 “핸드폰 사러 가자.”였다. 주변에는 핸드폰을 일찍 산 이도 있었지만, 나는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꼈던 터라 핸드폰에 관심이 없었다. 담담하게 핸드폰을 사는 게 오히려 더 죄송한 마음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산 핸드폰은 ‘SKY 레인폰’이었다. 수능에 대한 스트레스와 함께 핸드폰 알람이 적응되지 않아 머리가 너무 아팠다.
대충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성적표를 받는 날 성적표가 너무 보기 싫었다. 모든 과목 등급이 4였다.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을 가기에는 터무니없는 등급이었기에 낙담했다. 수시 지원한 게 있었지만, 합격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으로 가득 찼다. 재수 계획부터 내가 재수를 한다고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등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이제 다 끝났다며 공부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기말고사를 공부했다. 시험 끝나고 확인할까 생각도 했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수시 결과를 찾아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사회생의 순간, 그렇게 환호했던 적이 2002년 월드컵 외에 내 인생에 없었던 것 같다.
수능 시험을 겪은 사람들은 수능 이후 인생의 깨달음을 얻거나 수험생들에게 자신감을 주고자 수능에 대해 이렇게 많이 말한다. 수능은 별거 아니라고, 인생의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30대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온갖 풍파를 다 견디다 보니 별것 아니라고 느끼게 됐을 뿐 시험을 본 당사자나 아닌 이도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그런 조언은 큰 효과가 없다. 그때 나도 그랬다. 수능의 고통을 굳이 다른 일과 비교하거나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수능 시험이 최대의 사건이지 않겠는가. 수능의 결과가 인생을 좌우할 것처럼 느껴지고 기대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한 때다. 어설픈 격려나 조언보다 그 과정에 최선을 다해서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이 정말 그들을 위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별거 아니라는 느낌은 당사자가 나중에 몸소 깨달아야 하는 거고 평생 그렇게 느끼지 않을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맘때쯤 되면 항상 내 수능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나도 겪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기도 하고. 아무쪼록 올해 수능 시험을 본 모든 이에게 수고했고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