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May 22. 2023

내 라스트 댄스는 언제인가

나는 잘 살고 싶다. 이 잘 살고 싶다는 것에는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를테면 내가 꿈꾸는 삶의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것, 모두가 동의하는 성공의 선에 다가서고 싶다는 것, 경제적으로 걱정하지 않고 풍족하게 살고 싶다는 것,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 등이다. 그중 요즘 가장 내가 자주 생각하는 것은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다. 별 탈 없이 일을 마무리 짓고 좋은 결과도 내면 좋겠다는 것이 바람이다.


그런 바람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과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열망은 과거나 미래나 비슷할 것이다. 이를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유종의 미’라면 2022년에는 새로운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는데 바로 ‘라스트 댄스’라는 말이다. 이 말은 NBA 최고 스타인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에서 비롯됐다. 라스트 댄스는 97-98 시즌 시카고 불스의 우승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했다. 팀과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여정을 잘 드러낸 이 말은 다큐멘터리가 흥한 이후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됐다. 느지막한 나이에 성과를 이루는 것에 도전하는 것으로 말이다.


2022년은 특히 라스트 댄스가 어울리는 일이 많이 일어난 해다. ‘머신’이라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한 메이저리그의 강타자 알버트 푸홀스는 통산 703 홈런을 넘기고 은퇴했고 축구사 통틀어 선수 중 가장 으뜸으로 거론되는 리오넬 메시는 오랜 도전 끝에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높이 들었다. 같은 목표를 향한 도전자가 꼭 한 명만 있는 것은 아니며 도전 결과가 항상 최고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패자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대단한 양반들은 꼭 극에 달하더라. 그럼 그만한 그릇과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맛은 어떨까?


인생 그래프를 그릴 때 대부분 미래는 항상 정점을 향해 치솟게 그린다. 굽이굽이 굴곡진 롤러코스터 레일 같은 과거와 다르게 미래는 위만 바라볼 뿐이다. 현재는 알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장밋빛 내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려놨던 그 미래가 점점 현재로 다가오면 실제 마주하는 결과는 그리 달갑지 않은 롤러코스터 레일의 반복일 때가 많다. 미래는 항상 성공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숱한 실패의 반복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곤 한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내 인생의 정점은 언제일까. 나도 모르는 새 지나갔을까?


성공이 항상 인생의 마무리이며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엇이 성공인지, 성공에 매달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성공이란 것을 제대로 겪어보고 누려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인 것 같다. 지금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그건 어느 때나 그랬다. 대학교에 가기 전만 해도 내가 대학교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대학교에 가니 군대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으며 전역을 하니 취업 걱정에 한숨이 나왔다.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실현하고자 했지만 엉성하게 이루거나 전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앞으로도 해피 엔딩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겠지만, 출발선이나 출발 신호가 각자 다른 달리기 경기에서 멀리, 늦게 출발한 이가 빼어난 재능으로 따라잡지 않는 이상 앞서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매일 라스트 댄스의 자세로 임하려 하지만 그건 실패를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를 핑계로 감싸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이 모든 게 다 잘하고 싶고 잘 되고 싶어서 늘어놓는 푸념이다. 이래서 노년에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조금이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의 오호 대장군 중 하나인 황충처럼 노익장을 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하면 좋겠지만 역시 희망 사항이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이가 걱정하는 것이 더 오래 인생을 산 이들이 보기에는 귀엽고 콧방귀 나오는 일일 수도 있겠다. 나 또한 차라리 ‘그땐 그랬지’ 하며 머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라스트 댄스의 순간은 언제일까. 그 순간에 나는 웃으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생 뭐 별거 있나 싶지만 별거 있는 게 인생이기도 하기에 이 질문은 아마 죽기 직전에나 해답을 찾거나 그때도 찾지 못할 미결의 문제가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