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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y 29. 2023

야신에게 배우다

감성적인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은 것은 아닌지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끔 내 노년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각종 뉴스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 노인을 대상으로 한 TV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건강한 삶 등 대조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떻게 살지 상상해 본다. 나도 어떻게 노년을 살아갈까? 지금도 10대, 20대와 다른 체력을 실감하며 사는데 더 나이가 든다면 몇 배는 더 힘들게 느끼지 않을까. 젊음이라는 한때의 보물이자 무기를 나 역시 그리워하지 않겠나 예상한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김성근 감독이다. 그는 ‘야신’이라 불리며 자신의 인생을 야구에 바친 사람이다. 지금은 은퇴 선언을 하고 야구 예능의 팀 감독을 맡으며 여전히 치열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오롯이 몰두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7년 김성근 감독을 본 적이 있다. SSG 랜더스의 전신인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서 학교에 명사 강연을 하러 왔다. SK 구단이 연고지인 인천과 관련해 여러 활동을 했는데 인천 토박이 스포츠팬인 선생님의 노력과 얽혀 우리 학교에 찾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선생님 덕분에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인 장외룡 감독도 강연을 온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천의 수많은 학교 중 왜 우리 학교에 오는지 의문을 가졌다. 다른 명문 학교도 많은데 말이다. 그냥 유명인 한 명 온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겼던 것 같다.


학교 강당에서 들은 김성근 감독의 강연은 하나도 안 들렸다. 학교 시설 문제도 있겠지만 김성근 감독께서 원체 조용히 이야기하시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방과 후 집에 돌아가 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이승엽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도와준 이야기, 팀을 혹독하게 훈련한 이야기, 자신의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 등을 했다고 하더라. 실패 없는 인생이 오히려 실패한 인생이다. 절대 환경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자신만의 의지를 키우라, 늘 자신을 객관적인 위치에 놓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했다고 하는데 글로만 봐도 동기부여가 되는 조언인데 가까이서 제대로 들은 학생이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실 기억이 안 나 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 찾아봤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우승과 준우승을 거듭하며 팀을 정상으로 올려놨던 김성근 감독의 감독을 바라보는 나는 10대, 20대였다. 그때도 노장이라는 말을 들었던 김성근 감독이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기 일에 이렇게 임했을 때 최고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곤 했다.


내가 우리나라 야구사 전체를 꿰뚫지 못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야구인으로서 활동하며 온갖 풍파를 다 겪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대개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신이 아니기에 신이 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다. 김성근 감독도 그동안 얻은 경험과 통찰로 신이라는 별명을 얻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구시대적인 선수 운용과 그에 따른 모습을 독선적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비판을 넘어선 조롱도 있지만 한 분야의 거장인 것은 사실일 것이다.


이승엽에 이어 JTBC <최강 야구>의 최강 몬스터즈의 2대 감독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성근 감독은 여전히 정정하나 고등학생 때 봤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낀다. 야구를 소재로 한다고는 하지만 예능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도 있을 텐데 여전히 열정적이다. 직접 나서서 선수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 훈련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계속 공을 던져주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80대 노 감독에게 얼마나 피곤한 일일까. 또 예상하지 못한 위험의 순간도 있을 텐데. 본인이 솔선수범하니 선수들도 열심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예전이라면 같은 모습을 보여도 ‘김성근 감독이니까’라며 가볍게 생각했을 텐데 지금 김성근 감독의 모습을 보니 여간 멋있고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너도 아직 젊은 거라며 타박하는 이도 있겠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과거와 다름을 느낀다. 더 어렸던 시절에 비하면 뭔가를 하고 싶어도 각종 제약이 있다. 체력적인 것도 그렇고 시간적인 것도 그렇다. 원대한 꿈을 지녔던 과거와 다르게 그냥 마음 편히 살고 싶기도 하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로 가득하다. 타협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거나 현실과 이상 사이 줄다리기를 거듭하며 고민하는 것이 지금 나이의 나다.


이전에 라스트 댄스를 바라는 글을 쓴 내게 김성근 감독은 해답을 넘어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김성근 감독을 보며 ‘너무 늦었어.’, ‘이제 힘이 없어.’가 아니라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설령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욕심으로 비춰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안 나오게 하는 모습, 나이 때문에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능력이 되기에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회를 잡는 모습, 나도 김성근 감독처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뿐만 아니라 더 나이가 든 미래에도. 외형적인 모습은 바뀔지 몰라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나도 이를 경험하고 증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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