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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pr 24. 2023

회사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노동요 - 철도 인생

삶은 실수의 연속이다. 인간이 범하는 실수, 오류 즉 에러(error)를 ‘휴먼 에러’라고 한다. 휴먼 에러가 일어나는 상황은 다양하다. 자신의 실수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의 영향을 받아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휴먼 에러가 물리적인 사고의 범주에만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발생하는 관계적인 문제나 자신 내면의 문제에서도 휴먼 에러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요인에서 비롯한 휴먼 에러의 후유증은 다양하고 기한의 길이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심리 상담 치료다. 한국철도공사 인재개발원에는 상담센터가 있어 직원들이 신청을 통해 바로 각종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여러 사정으로 인재개발원의 상담을 받을 수 없는 경우 MOU를 통해 연결된 각 지역에 있는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상담을 받았는데 이를 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발견과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인재개발원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우연히 상담 관련 내용을 봤고 신청했다. 심리상담이라는 것이 MBTI 같은 것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심리 검사를 통해 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밖에도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보겠느냐’는 생각과 ‘손해보다는 도움이 될 내용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상담을 신청하려면 신청 사유를 적어야 하는데 이 또한 지금 말한 이유와 다를 바 없었다. 신청 후 며칠이 지나 상담센터장의 연락을 받았다.



“정확히 무슨 이유로 상담하려는 건가요?”

“제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데요. MBTI 같은 성격 검사요.”


내 답변에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은 걸 느껴 바로 되물었다.


“너무 막연한가요?”

“각종 성격 검사 같은 것은 수십만 원짜리 검사를 신청해서 하는 거라 할 수 없을 것 같고 구체적인 고민을 말해주세요. 진로라든지.”

“그럼 그걸로 해주세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내가 선택한 상담센터의 연락을 받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상담센터였다. 상담은 6주 동안 진행되고 매주 약속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원하는 시간을 말했더니 예약이 차 있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 직원들은 상담받지 않더라도 외부 고객도 받을 테니 당연했다. 남은 시간이 내게 불편한 시간대밖에 없었지만, 기왕 하기로 한 거 참고 가기로 했다.


상담센터에 방문하니 각종 서약문을 썼다. (모든 상담센터가 같은 과정을 거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약문을 보니 자살하지 않겠다는 각서였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상담과 회사에서 하고자 하는 상담의 방향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스트레스와 이를 푸는 방법으로 자신을 해하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방법이지만 그만큼 많은 고통을 겪고 고민의 시간을 거쳤을지 내가 깊이 헤아릴 수 없고 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과 나의 옳고 그름을 마음대로 판단하거나 우열을 가릴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약문을 보니 지금 하려는 상담이 필요한 대상이 나보다는 더 깊은 고민을 하는 이들일 것 같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상담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될 것 같아 첫 번째 만남 후 상담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인재개발원 상담센터에서 상담하고자 하는 내용을 미리 전달해놓겠다고 했는데 전달이 되지 않은 건지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상담 이유를 또 물어봤다. 그래서 솔직하게 답했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찾은 내 동기와 다르게 지금 진행되는 과정은 훨씬 진지한 것 같은데 과연 내가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선생님은 웃으면서 단순한 절차지 상담 방향과 대상이 자살에 맞춰진 것은 아니라며 그만둬도 좋으니 한번 해보자고 했다. 인재개발원의 상담 안내를 받을 때도 총 6회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중간에 그만두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협력 상담센터에는 상담받은 횟수만큼 돈이 지급된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닐 수 있겠지만 내가 중간에 그만두면 이 상담센터의 벌이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아 차마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된 상담. 목적이 명확하지 않아 깊은 상담을 못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상담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거나 치료되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상담 시간을 소리로 표현하자면 ‘우당탕’이었다. 상담은 내 삶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그 안에서 선생님의 내 기질 같은 것을 발견하며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은 이 상담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계속 강조했다. 선생님은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나 조금 답답했다. 상담 시간이 끝나버리면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돌아가는 게 비효율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상담에서 그림 치료, 역할 놀이 같은 것을 할 줄 알았다. 매시간 프로그램이나 대화 주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느껴지는 흐름이 있고 선생님이 이끌어주면 좋겠는데 뭘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근래 내 이야기를 할 시간도 대상도 없었는데 속 편히 털 수 있는 사람,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남에게 차마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까지. 다른 사람이라면 말할지 말지 고민만 할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니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만담에 가까운 내 수다가 너무 길어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이 상담 시간을 초과했다면서 끝내는 날이 잦았다. 어쩌면 이것이 내게는 힐링이었을지 모르겠다. 또 이 상담을 통해 나 자신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어떻게 나를 대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방향성은 잡은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나아갈지가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상담센터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 있던 각종 상담 안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저곳 있던 상담센터들이 다루는 분야를 유심히 보니 아동 상담, 부부 상담 등 많은 이가 여러 상황과 문제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일이 아닐 뿐이지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도) 상담센터를 다니며 나눴던 내가 가진 고민과 생각도 이런 곳에서 상담할 수 있는 소재겠지만 상대적으로 중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사내 커뮤니티 게시판만 보더라도 여러 직원이 자녀, 부부 문제 등으로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혼자서 풀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고 마음고생이 심해 오죽하면 도움받고 싶어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을 것을 생각하니 나보다 더 도움이 급한 이들이 회사의 이런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더라면 조금은 수월하게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가 아니더라도 직장인이라면 사내에서 지원해주는 여러 프로그램을 유심히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유익한 것이 많은데 내가 찾지 못해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상담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상담은 요즘 같은 대화가 줄어들고 비대면에 익숙한 상황에 더 필요하고 효과적인 일인 것 같다. 내가 스스로 풀기 어려운 고민거리가 있다면, 혹여 그런 게 딱히 없더라도 한 번쯤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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