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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n 05. 2023

타지에서 날아온 편지

노동요 - 주절주절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사내 메일로 부고장이 왔다. 다른 지방에서 근무하시는 분이니 같은 직장이더라도 퇴직할 때까지 아마 만나지 못할 것이다. 보통 소식을 접한 같은 부서나 역의 사람들이 부고장을 만들어 돌린다. 자신이 몸담았던 곳만 돌리는 사람이 있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돌리는 이도 있다. 전국에 직원이 많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온다. 이런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보내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고 돈으로 위로가 될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에게 부조금을 보낸다면 며칠 못 가 나는 파산할 것이다. 그래서 아는 이가 아니면 그냥 명복을 빌며 메일을 삭제한다.


다른 생각 없이 울음과 웃음으로 원초적인 감정풀이가 넘쳐나는 경조사도 사회생활, 회사생활에 접어들면 말 그대로 일이 되어버린다. 누군가의 소식이 들리면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 지갑을 꺼내고 은행 앱을 켠다. 친한 사람, 일반 동료, 그냥 얼굴만 아는 사람 등 각자의 기준으로 돈을 건넨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에 감성적인 반응보다 이해타산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인터넷 서핑은 전혀 할 수 없는 회사 인터넷망과 포털에는 사내 게시판이 여러 개 있는데 경조사 게시판은 활발한 게시판 중 하나다. 많게는 하루 수십 개의 결혼과 부고 소식이 올라오는 이 게시판을 보며 한 가정의 탄생과 죽음이 얼마나 잦은 일인지 알 수 있다. 이 작은 대한민국의 회사에서도 이런데 지구상에서 탄생과 죽음은 셀 수 없을 만큼 일어나지 않을까.


현직자의 소식이 아닌 퇴직자의 자녀 결혼 소식이나 돌잔치 소식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사람이나 일의 경중을 가리며 축하하고 위로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또 축하와 위로를 받았으면 돌려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도 든다. 하지만 너무나 적극적인 소식 전달에 경조사가 함께 울고 웃는 일이 아닌 한탕 노리는 기회의 장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기회가 없다. 결혼은 언제 할지 모르겠고, 아버지,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나셨으니. 남은 사람은 엄마인데 그냥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나도 돈을 좋아하지만 이런 일로 받는 돈은 마냥 달갑지는 않을 것 같다.


장소에 직접 찾아가 축하하고 위로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 나는 경조사비만 건네고 있다. 또 일을 치르고 나면 잊으려고 하는 편이다. 일일이 다 생각하면 남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다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도움을 줬으니 상대도 그러기를 바라다 더 상처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행동이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를 다니며 경조사를 치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는 장부를 적는 이도 있다. 현명하고 알뜰하게 보이기도 하나 자기가 받은 금액에 따라 사람의 급을 나누고 그걸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보이거나 누구는 얼마를 했다는 둥 가볍게 말을 꺼내면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이건 단지 내 생각일 뿐 어떻게 행동하느냐도 다 본인의 선택이니 뭐가 낫고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제 경조사도 이것저것 따져야 하는 계산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예전과 달리 비혼이 늘어나는 요즘 결혼을 무조건 호재, 경사라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행하면 축하는 받고 있으니 결혼을 호재고 경사라고 한다면 죽음에는 경사처럼 대할 호상이 있을까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을 떠난 사람과 다르게 세상에 남은 사람이 돈을 챙기니 죽음도 호상이라 부를 수 있는 경사인 건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제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라 돈을 남기나 보다. 나는 과연 얼마의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죽으면 드러날 텐데 행여나 남은 가족들이 실망하지 않을는지 벌써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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