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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l 03. 2023

직업병은 못 말려

노동요 - 주절주절

난 착한 사람이 아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악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교육하기 나름이라는 ‘성무선악설’ 중에서 나는 성악설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인생을 빗대서 보면 나는 악하지만, 규범과 교육에 길들어 이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이라는 게 보통 유년기에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학교 교육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후로는 교육에 의한 변화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에서 받는 서비스 교육과 관련 업무 덕분에 본래 나에게 기대할 수 없고 나 자신도 놀라는 일을 겪을 때가 잦아졌다. 나는 이것을 인성의 개선이라기보다 직업병이라고 보기로 했다.


내 직업병은 교육받은 친절함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나 자체는 전혀 친절하지 않다. 인파가 많은 곳에서 누군가 사소한 곤란을 겪을 때 이를 돕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지나치고 제 갈 길 가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먼저 반응해 도와줄 때가 많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지?’하고 자문한다. 얼마 전 패스트푸드점에 있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기를 어려워하던 노인께 주문하는 법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 밖에도 길 헤매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길을 알려주거나 지하철역에서 나가는 곳과 타는 곳을 혼동해 카드를 잘못 찍고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등 원래 나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을 자주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알려주면 좋을 텐데 말투나 몸짓에서 서비스 교육으로 익힌 게 나와 보기에 참 어색한가 보다. 나는 잘 몰랐는데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않았음에도 다른 사람 눈에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주변 동료들과 사복을 입은 채 같이 다닐 때 내가 다른 행인을 도운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일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였다. 어떻게 말을 하고 행동할지 생각하고 한 것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나온 것이라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혀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행동은 나의 착함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다.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보다 답답해서 그런 것이 큰 것 같다. 누군가 버벅대는 것이 내 눈에 띄면 이를 지켜보는 것이 답답한 것이다. 예전에 서비스에 대해 교육받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 서비스라는 것은 빠르게 일을 처리해 다음 대기자들의 일을 마주할 수 있는 것, 알려줌으로써 다음에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서비스 제공자는 다른 일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서비스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삶 깊숙이 박힌 것 같다. 그래서 앞장서서 도운 것 같다.


가끔은 지나치고 싶을 때도 있다. 나서고 싶지 않고 못 본 척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교육받은 몸과 정신이 본성을 압도하는 것이 느껴진다. 모르는 체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본의 아니게 나오는 직업병 때문에 힘들다. 몸이 피곤한 것보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다르게 행동하는 나에 대한 괴리감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나아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이런 도움을 주는 것이 별거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선행이 될 수 있는 이 작은 행동들이 직업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착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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