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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23. 2023

나의 짧은 코로나 투병기

이 내용으로 글을 쓸 일은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또 그렇게 하려고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2023년 6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이 글은 짧지만, 강렬했던 코로나바이러스 투병기에 관한 글이다.


코로나 종결이라며 정부와 언론에서 화두를 꺼낼 때도 방심하지 않으려 했다. 부작용 이슈가 돌아도 예방접종 시기가 다가오면 꼬박꼬박 찾아 주사를 맞았다. 우리나라에 감염자가 0명이 되지 않는 이상 마스크도 벗지 않기로 다짐했고 그대로 실행했다. 점점 마스크 착용이 줄어드는 회사와 거리를 보며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로 더욱 마스크와 한 몸이 되려고 노력했다. 완전히 밖을 나서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헬스장, 집, 회사 정도가 다일 정도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단순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동선을 유지했다.


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는데 순간의 방심이 계기를 만든 것 같다. 야간 근무로 몸이 피곤해 잠깐 찬 바닥에 누워 잤는데 그 후 몸살 기운이 있었다. 며칠 쉬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지냈는데 목감기 기운이 느껴졌다. 근데 조금 다른 느낌의 목감기였다. 목감기 치고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느껴보지 못한 수준의 고통이었다. 심한 감기에 걸렸다는 생각에 병원에 갔다. 낫지 않으면 독감이나 코로나일 수도 있으니 계속 그러면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노파심에 하는 말일 거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몸 상태는 비슷했지만 처방받은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코로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신에 가까워졌다. 집에 모셔만 두고 사용하지 않은 진단키트를 꺼냈다.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며 겨우 검사했다. 순식간에 그리고 선명하게 두 줄의 선이 나오는 것을 보며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하는 데 집중했다. 먼저 회사에 알렸고 주말에도 운영해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있는지 찾아봤다. 다행히 근처에 있었다.


결과를 본 가족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각종 비난과 함께 나를 사람 취급이 아닌 바이러스 취급을 했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 마음이 금방 식을 정도였다. 물론 본인들의 일이 지장 받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런 반응을 했겠다는 생각으로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내게 쾌유를 바라는 말 한마디 또한 없는 걸 보며 섭섭했다. 말이라도 쾌유를 빌어주는 직장 동료들이 오히려 고마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아팠던 목이 더 아팠다.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불덩이를 하나 삼킨 느낌이라면 이제 서너 개 삼킨 느낌이었다. 그 외에 컨디션이 아주 나빴던 것은 아니라 서둘러 병원에 갔다.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병원이 귀해서 그런 건지 이른 시각부터 어린아이와 부모님들로 가득했다. 아픈 몸 때문에 정신없는데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병원이 소란스럽다 보니 더욱 힘들었다. 짜증이 폭발할 것 같은 것을 꾹꾹 참으며 순서를 기다렸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께 검사를 다시 받고, 양성임을 확인했다. 진료확인서와 처방전을 받고 보건소에 신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적어낸 후 병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약국에 처방전을 내니 처방전만 봐도 코로나 환자인걸 아는지 약국 밖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쫓겨났다. 이유는 직접 듣지 않아도 이해됐지만 약국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코로나 환자인 것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약을 받고 집에 돌아와 약을 먹었다. 진통제 성분 때문인지 목의 아픔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몇 시간 안 가 보건소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격리 기간을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예전에는 7일간 격리 후 밖으로 나설 수 있었지만, 지금은 5일 격리로 바뀌었고 이마저도 의무가 아닌 자율이라고 한다. 고통을 견딜 수 있으면 그냥 생활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5일 동안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어서 그냥 쉬기로 했다. 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데 병 덕분에 강제 휴가를 얻어냈다. 이렇게 길게 쉬어본 적이 6~7년간 없어 적응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내심 좋았다. 남들 그랬던 것처럼 이것저것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지내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고 좁은 방에서 뭘 하면서 지낼지 생각하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며칠 마음껏 놀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방탕한 삶을 다짐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니 오히려 불편했다. 시간이 가지 않아 답답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것이었다. 오랜 시간 심신을 단련한다면서 한 곳에 머물러 도를 닦는 수도승이 경지에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약이 효능은 있지만 아주 빠르게 몸이 회복되지는 않았다. 목의 통증과 가래가 끓는 증상은 몸이 많이 나아진 지금도 남아 있다. 그 외에는 다른 감기와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었다. 약을 먹어서 그런 것인지 계속 피곤해 잠을 청했다는 것, 후각이 사라지진 않았는데 과거와 비교하면 감각이 약해진 것 같다는 것, 덩달아 미각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맛을 아예 못 느끼는 것은 아닌데 모든 음식이 그다지 맛있게 안 느껴진다는 것 등이 내 몸에 생긴 변화다. 이게 후유증인 것인지 또 완쾌된 후에 남아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행여 그럴까 걱정된다. 점점 나아질 거라는 기대로 이후를 보내려고 한다.


아쉬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쉬움을 말하라고 한다면 내 노력에 대해 아쉽다. 이렇게 걸릴 거면 지금껏 왜 이리 노력했느냐는 것이다. 각고한 노력에도 며칠 사이에 몸이 아프게 되어 허무함이 앞섰다. 내가 이만큼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제야 걸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 철저했더라면 걸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돌아온 것은 나 자신에 대한 큰 실망이었다. 혹여 주변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을까 미안했다.


이렇게 병치레를 하고 나니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역시 아프지 않은 것이 좋다는 것이다. 주변이 다 걸리고 그들의 몫까지 일하며 고생할 때 이럴 거면 나도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었는데 걸리고 나니 안 아픈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5일의 격리 기간은 완치 예상 기간은 아니다. 감기 증상처럼 미약하게나마 병세가 남아있다. 하지만 이후 밖에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며 평소처럼 지낼 것이다. 한번 병에 걸렸다고 이제 코로나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몸조리를 잘하며 생활할 것이다. 이전처럼 마스크 착용 또한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투병 생활을 했다고 내 마음대로 생활하라는 자유권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 투병기간은 내게 많은 생각을 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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