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게 가장 심한 스트레스를 안기는 것은 인간관계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에 여유는 생기나 인간관계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늘었다. 나도 남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누구든 거리를 두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쳐 놓은 울타리 때문에 내가 남에게 다가가는 것, 남이 내게 다가오는 것 모두 줄었다. 그래서 나를 터놓고 말할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고 싶은 마음이 예전에 있었다면 지금은 그보다 작은 쌀 한 톨도 나누고 싶지 않다. 사람을 믿지 못해 인색해졌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소인배가 되고 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지 못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사람이다. 이를 나쁘게 말하면 순진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내 이야기를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구라면 털어놓아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도 결국 남이다. 피 한 방울 섞인 것 없이 다른 환경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기 때문에 가족만큼 온전히 이해받기란 어렵다. 그래서 나를 꼭 지켜 주고 도와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고민이 놀림과 조롱거리가 되고 천리마가 되어 달려가 멀리 있는 다른 이도 알게 되는 일을 겪으니 그 친구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분노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친구보다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더 믿을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내 이야기가 뒷담화 소재가 될 가능성은 적을 테니까.
이야기만 되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힘든 것, 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을 호재로 여기거나 고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남이 잘되는 것을 축하하면 했지, 부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내가 내 힘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관심이 부족해서 반응이 싱거운 것은 아닌지 내가 너무 차가운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이 나와 같지는 않은가 보다. 내게 안부를 묻는 몇몇은 마치 불행한 일이 없는지 궁금해하고 그렇기를 바라는 것처럼 캐묻는다. 자기보다 잘 안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는지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이야기를 하면 큰 실망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피하고 싫어한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남에게 안부를 묻는 게 어려워졌다.
모두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인 걸까? 누구 하나 좋은 걸 누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누려야 하고 내가 불행하면 남도 불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는 사람이 참 많다. 더 나아가 자신이 어떤 부문이든 우위에 있어 상대에게 동질감이 아닌 그 이하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지, 자신보다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불행을 함께 슬퍼하는 주변인들이 많은데 왜 나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걸까. 이럴 때마다 나는 인복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끼리끼리 논다며 이렇게 말하는 너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며 그래서 복이 없는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온전히 내 탓이라고 하기는 억울하니 나도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더 오래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사람 한 번 바로 잡아 보겠다며 충고와 조언을 하면 머리가 클 대로 큰 사람이기에 듣지 않는다. 내 인생을 살아갈 때 활용하는 잣대, 상식 등이 확고히 자리 잡은 성인은 어린이와 다르게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설령 잘못된 행동일지라도 누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올바르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이야기하면 더 불협화음이 일어날 거라는 우려 때문에 말하지 않는 때가 많다. 그래서 그 착각은 확신으로 바뀐다. 나도 잡음을 내고 싶지 않아 쓴소리하는 것을 줄였다.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이유도 있다.
나도 사람이고 사람으로서 산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아마 죽을 때까지 해결 못 할 일일 수도 있겠다. 연구하는 동물 인간이 평생 가장 연구해야 할 대상은 인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