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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08. 2024

설국열차

노동요 - 철도 인생

어린아이라면 눈이 내리는 것을 반가워할지 모르지만, 어른이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아진다. 눈을 ‘악마의 비듬’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출근길 걱정부터 치울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철도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렇다.


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 다니는 길부터 승강장에 쌓이는 눈을 치워 미끄럼 사고를 방지해야 하고 승강장 안전문 주변도 정리해 눈 때문에 문 여닫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눈 내린 후 누수 때문에 일어나는 일도 해결해야 한다. 어찌 보면 누수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누수 때문에 불이 나지 않았는데 화재 경보가 울린다거나 기기가 잘못 작동된다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므로 이를 염두하고 있어야 한다.  


열차에서 일하는 기관사와 차장도 눈이 내리면 여러 성황에 놓이게 된다. 기관사는 눈 때문에 선로가 미끄러워 평소와 달리 역에 도착하면 정차 위치를 벗어나는 게 허다하다. 차장은 출입문과 승강장 안전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걱정 속에 일한다. 기온이 낮기까지 하다면 객실 온도에 더 민감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객실을 최대한 따뜻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역에 도착해 문을 여닫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객실 온도가 1~2도 떨어져 버린다. 오래 정차하는 때는 객실마다 문을 한 개씩 열어 놓는 ‘반감’ 취급을 하기도 하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혹한 속에서 놀라운 게 있는데 바로 사람의 열이다. 객실 난방으로도 금방 온도가 안 오르는데 사람이 꽉 차니까 3~4도가 금방 오른다. 사람 몸이 참 뜨겁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겨울 근무의 불안함과 피곤함을 조금 덜어주는 게 있다면 눈 내리는 광경이다. 눈 내리는 날 열차는 운치 있다. 빠른 속도로 내리는 눈 말고 말 그대로 ‘펑펑’ 내리는데 천천히 내려 땅에 소복하게 쌓이는 눈의 모습을 보면 왠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잠깐은 내 마음도 새하얗게 깨끗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순간의 감상일 뿐이다. 겨울에 일할 때는 제발 빨리 겨울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최대한 안전한 상황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한결같다)


승객도 직원도 불편한 날씨 속 기차 여행을 즐길 방법은 없는 걸까? 만년설처럼 겨우내 눈이 녹지 않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일본 홋카이도처럼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즐길 수 있는 열차와 열차 연계 관광 상품이 많이 개발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는 많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는 이동 중 광경을 보도록 열차가 만들어졌다고 생각 들지 않는다. 선로 주변 풍경도 그렇다. 보는 재미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풍경을 감상하기 편하게 기차를 새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작 비용은 물론 그에 따른 열차 표 가격 상승은 어쩔 수 없다.


지역 관광 상품과 협업이나 여러 콘텐츠와 협업으로 상품을 만드는 것도 비용이 들고 이에 따른 가격 상승도 불가피하다. 결국 돈이다. 이런 수요가 많으면 좋겠지만 지금 회사에서 운행하는 관광열차도 엄청난 수익을 벌어다 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서비스 차원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불필요한 적자를 늘리는 길이 될 수 있다.


교통수단으로써 역할이 가장 크지만 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철도의 가장 큰 문제다. 기차가 이동 수단으로써가 아닌 관광과 콘텐츠 그 자체로써 더 많이 활용되어야 하고 그 수요가 필요한 상황이다. 웬만한 곳에 역이 있다는 것은 활용할만한 장점이다. 관광지 바로 앞에 역이 있지 않다면 역에서 해당 관광지에 도달하도록 다른 교통수단까지 협업하는 방식으로 연계 상품을 만든다면 이동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지의 지원을 받아 회사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조금 줄인다면 부담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역까지 가는 동안 아기자기한 콘텐츠도 구성된다면 이동하는 동안 재미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기차는 언제나 달린다. 눈에 보일지, 그 노력이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한여름은 물론 한겨울에도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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