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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15. 2024

다시 대학교에 간 기분 – 동호회 활동

노동요 - 철도 인생

역에서 벗어나 일하면서 놀란 게 하나 있다면 그중 하나가 동호회 활동이다. 역 안에도 동호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아마 사업소 규모의 근무지에 비해 근무 인원이 적다는 점, 전입과 전출이 잦다는 점 등이 동호회를 만들고 활동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동호회는 지역과 사업소마다 다양하다. 여러 주제를 가지고 동호회가 구성되는데 대개 축구, 야구, 당구 같은 운동, 독서, 등산, 낚시 등 취미 활동,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 활동 등 동호회가 많으며 또래나 같은 직렬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만들어진 동호회도 있다. 보통 동호회는 ‘철도 신협’이라는 곳에서 가입 신청 및 동호회비 자동 이체를 신청하고 이를 토대로 운영된다. 철도 신협에 등록된 전국 각지의 동호회만 해도 수백 개에 달한다. 그 외 신협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조직도 생각한다면 더 많은 동호회와 조직이 우리 회사에 있을 것이다.


사업소 내 수많은 동호회 중 나는 축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사업소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동호회인데 가입한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서다. 근무자 수가 많아 금방 많은 사람을 알게 될 줄 알았건만 일하는 동안 인사만 할 뿐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심지어 인사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만 사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영영 아무도 모른 채 일만 할 것 같아 가장 활동적이라는 축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아는 얼굴이 점점 늘어 고독한 기분은 덜하다.


두 번째는 축구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체육 시간, 점심시간, 쉬는 시간 등 시간만 나면 공을 차고 놀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축구는 프로 경기나 월드컵을 비롯한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 보기만 하는 스포츠가 됐다. 어릴 때처럼 신나게 공을 차며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20대부터 줄곧 했는데 이제야 직접 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내가 속한 축구 동호회는 이미 퇴직한 선배님들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경기마다 참여하며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는데 연륜을 뛰어넘은 실력과 체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처음 경기에 참여했을 때 나는 그 선배님들을 솔직히 얕봤다. 내가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젊음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없는 자신감을 느끼며 경기에 임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무참히 깨졌다. 거친 숨을 내쉬며 눈앞이 까마득한 나와 달리 선배님들은 멀쩡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경기에 임하는 동호회원들의 자세였다. 우리는 축구 선수가 아니기에, 다른 일을 하는 직장인이기에 몸을 사리며 경기할 줄 알았다. 경기 전에 인자한 웃음으로 안부를 물으며 준비 운동을 할 때까지만 해도 마치 종교 행사에 온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니 너나 할 것 없이 승부욕을 불태우며 죽어라 뛰고 거칠게 몸싸움하는데 설렁설렁했다가는 오히려 내가 다칠 것 같았다. 처음 실점했을 때는 여유 있는 웃음이 나왔지만, 경기에 몰입할수록 나도 점점 이기고 싶어 살벌해지는 것을 보며 어릴 적 잊고 지낸 승부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경기 외에 동호회 활동이 재미있는 것은 동호회 방이다. 일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동호회 방에 가서 쉬고 동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치 대학교 다닐 때 공강 시간에 찾아간 동아리 방을 찾아가는 기억이 떠오른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해도 즐거웠던 그때처럼 방에서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세월은 흘렀을지 몰라도 여전히 청춘들의 향이 물씬 느껴졌다.


동호회에 들어간 것은 잘 선택한 일인 것 같다. 일하며 얻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운동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추억을 곱씹으며 조금 어려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덤이다. 전철차장 일을 하는 동안 시간만 된다면 동호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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