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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29. 2024

지하철이라는 행성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노동요 - 철도 인생

나는 지구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이다. 내가 사는 현실은 지구인들만 살 것만 같다. 하지만 가끔 4차원이나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은 행동을 하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기분을 자주 받는 곳 중 하나는 지하철이다.


전철차장을 하면서 한 번씩 특이한 안내방송을 하라고 연락을 받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방송해야 하는 대략의 지침서, 대본은 나와 있으나 포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송 문구가 대부분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 방송하려면 순발력과 창의성이 있는 애드리브를 해야 할 때가 적잖이 있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방송 좀 하세요.” 이렇게 연락이 오면 황당함과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방송할지 고민하게 된다. 고민이 길면 안 된다. 누군가의 심기를 거슬렸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민원을 넣은 것이기 때문에 바로 방송을 내보냄으로 당신의 민원에 귀 기울였고 이를 처리하고자 이렇게 방송했다고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


지금부터 거론하는 인물들은 민원 해결을 위해 방송해야 했던 외계인 같은 독특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 주크박스

우리나라 사람은 참 흥이 많다. 음악과 노래를 즐긴다. 노래방이 발달한 것도 노래와 관련된 방송이 많은 것도 이런 영향이 아닐까? 문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철 안에서도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많은데 자신의 흥과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지 개인적으로 듣지 않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게 듣는 때가 있다.


외부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와도 조용히 나오면 지루한 전철 여정을 조금 해소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흥에 겨워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고성방가가 된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에 취해 가수가 되는 사람들. 귀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여러 방송이 있겠지만 내가 하는 방송은 대개 이렇다. “전철은 많은 이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입니다. 다른 승객을 위해 음악은 이어폰을 사용해 청취 부탁드립니다.”


전설의 포켓몬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희귀한 사람들이 지하철에는 가끔 눈에 띈다. 복장이 독특하다든가, 행동이 이상하다든가. 인터넷이나 유튜브 같은 곳에 심심치 않게 영상으로 찍혀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고 비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지하철은 이거 보려고 돈 내고 타는 것이다.”라고. 로또도 돈 내고 당첨되듯 돈 내고 이런 특이한 상황을 겪는 것이다. 매번 당첨되는 것이 아니라 가끔 당첨되는 맛이 로또와 전철의 공통점 아닐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전자는 5,000원이라도 꼭 당첨되고 싶지만, 후자는 막상 당첨되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다른 사람에게 확실히 폐를 끼치고 있다면 보통 방송보다는 인근 역의 출동 역무원과 함께 제지하거나 강제로 하차하게 한다.


임산부 배려석의 지배자

2013년부터 임산부를 위해 임산부 배려석이 만들어졌다. 만삭의 임산부부터 초기 임산부까지 편히 앉아가도록 만들어진 이 자리는 임산부가 객실에 없다면 비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아무나 앉는 일이 늘고 있다.


이런 꼴이 보기 싫은지 민원이 자주 들어와 앉지 말라고 방송해야 할 때도 늘고 있다. 남자가 앉는 경우도 많고 애매하지만, 여자들이 앉을 때도 많다. 이들은 나이의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임산부가 없을 때는 필요한 사람이 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전철차장이 아닌 일반 승객으로 전철을 이용할 때 참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물론 눈썰미만으로 이 사람이 임산부인지 그냥 앉고 싶어 앉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임산부라면 임산부임을 보여주는 패치가 있어서 이를 달고 다닐 수 있다. 적어도 이들이 보이면 양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양보하지 않고 제 갈 길 가는 모습은 나만 생각하는 의식이 만연한 우리나라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


이와 관련한 민원이 들어오면 내가 하는 방송은 대개 이렇다. “우리 열차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초기 임산부라도 자리를 양보하는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룰 브레이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은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백번 양보해 이런 생각은 존중할 수 있다고 해도 규칙을 어겨가며 하는 행동은 존중할 수 없다. 하지만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열차 운행을 마치면 대개 잠깐 회송 후 다른 승강장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용산행 급행열차는 용산역에 도착하면 잠깐 회송 후 다시 동인천행 급행열차로 바뀌어 동인천역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열차의 종착역에 도착하면 모두 내리라고 방송을 하고 열차를 정리한다. 하지만 다시 동인천 급행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고 동인천 급행 출발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지 않고 용산 급행 도착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렸다가 타는 사람들이 있다.


열차를 정리하다가 가끔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말을 몰라서 내리지 못한 외국인이 아닌 이상 먼저 의자에 앉으려고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왜 안 내렸냐, 왜 탔냐고 물어보면 인천에 가려고 그랬다는 뻔뻔함을 보인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은 하지만 콧방귀를 뀌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만약 돌아가지 않고 차량기지 같은 곳에 가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지. 그럼 자기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고 난리를 칠 게 뻔한 사람들이다. 제발 정해진 곳에서 열차를 타고 방송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이 밖에도 취객, 이동 상인, 쩍벌남 등 자주 볼 수 있는 민폐 인간이 있다. 이들에 대한 대처 또한 방송과 출동 후 대면 등이 있다. 일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만연해 이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적지 않았다. 일반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다. 때로는 자신이 피해를 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처럼 자신이 피해를 본다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눈에 불을 켜고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 자신의 편함을 위한 행동이 남에게는 불편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남을 배려하며 열차를 이용한다면 자신도 배려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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