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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Feb 19. 2024

지극히 주관적인 눈에 띄는 볼만한 역

노동요 - 철도 인생

전철차장을 하면서 힘들지만, 재미있는 게 이곳저곳을 다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일을 오래하면 할수록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니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여러 풍경을 보는 것이 소소한 재미로 다가온다. 그래서 주관적이지만 내 눈에 띄었던 역과 구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언급할 역은 지금 내가 열차를 타고 다니는 1호선 기준이다. 모든 역을 하나씩 찾아가 내외 광경을 꼼꼼하게 본 것이 아니다. 전철차장으로서 운전실 창으로 본 역 내외의 모습, 차 안에서 또는 내렸을 때 본 승강장의 모습을 종합해 미관이나 구조 등이 눈에 띈 역을 꼽은 것이다. 또 역과 역 사이 구간은 고려하지 않았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그 의견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미리 말하고 싶다.


1. 서울역

전철이 다니는 구간은 지하 서울역이다. 지하 서울역은 승강장밖에 볼게 없어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서울역에서 남영역 쪽으로 나올 때 보이는 지상 서울역의 모습은 꽤 볼만하다. 거대한 KTX 승강장에서 보이는 웅장함이 인상적이다. 특히 낮보다 환하게 불이 켜진 밤에 볼 때 가끔 감탄사가 나올 때가 있다.


2. 도원역, 오류동역

이 두 역을 묶은 이유는 받은 느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열차 안에서 이 역을 바라보면 지붕구조가 왠지 유치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역과 비교해서 아주 다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모습이 있다.


3. 송내역

역 자체는 다른 역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은 없어 보이나 역 밖에 있는 버스 정류장 지붕이 눈에 띄는 역이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포르투갈과 경기했던 인천 문학경기장 지붕처럼 생긴 이 지붕은 크루아상처럼 생기기도 했다. 이 지붕도 저녁에 불이 켜졌을 때 더 예뻐 보인다.


4. 독산역

역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역이다. 특히 봄에 보면 예쁜 역이다. 역이 예쁘다기보다 역 주변에 벚나무가 많아 벚꽃이 만개했을 때 보면 참 좋다. 훈훈한 바람을 맞으며 분홍빛으로 물든 길을 보면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5. 당정역

당정역 승강장에 도착하면 벽이 눈에 띈다. 진짜 벽돌인지 모르겠지만 벽돌이 규칙적으로 쌓여있기도 하고 나무가 벽을 꾸미고 있기도 하다. 대리석, 콘크리트, 철 기둥 같은 구조가 아니라서 그런지 예쁘게 느껴지고 편안하기도 하다.


6. 의정부역

역이 다른 역에 비해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깔끔하다.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등도 의정부역의 여러 출구를 잘 찾아갈 수 있게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7. 평택지제역

경인선이나 구로 인근의 경부선 역보다는 이용하는 승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역 자체가 참 크게 느껴지는 역이다. SRT 승강장이 있어서 그런지 역 외관이 독특하다. 주변에 공사를 크게 하고 있어서 이 공사들이 끝이 나면 조금 더 화려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8. 직산역

역 자체가 인상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주차장이 인상적이다. 역보다 주차장이 커 보일 정도다. 교통이 불편한 것인지 사정을 잘 모르지만 이렇게 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별개로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자면 가끔 역 건물마다 디자인이 특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예술 작품으로 활용하려고 역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건물이나 시설 등을 만들 때 디자인을 밋밋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때가 잦은 것 같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도어도 모양만 보면 가끔 흉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설치했지만, 예전에 스크린도어 없을 때 주변 환경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역과 역내 시설물 등의 디자인을 조금만 창의적으로 해 사람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면 역을 찾는 이들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회사에서는 돈이 없다면서 실현하려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번외편: 눈에 띄는 역 사이 구간

1. 노량진-용산 한강 길과 빌딩 숲

노량진에서 용산까지 가는 길은 꽤 멀다. 한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넘어가는 동안 보이는 한강은 참 아름답다. 여름에 비가 많이 와 물이 넘쳐날 때도, 겨울에 너무 추워 강이 얼어붙었을 때도, 이른 아침 햇빛과 함께 보이는 모습, 늦은 저녁 환한 불빛이 보이는 창문과 함께 보이는 모습 등 시기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강은 인상적이다. 주변에 있는 거대한 빌딩이 모여 있는 빌딩 숲도 괜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아 여러 생각에 잠기게 한다.


2. 도봉-망월사 산과 함께 보이는 탁 트인 경치

일하면서 이 구간을 가게 됐지 지금껏 살면서 내가 이쪽까지 갈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 구간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거대함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산과 역 주변에 있는 도로 모두 큼직큼직하다. 지하철을 타면 좀 갑갑할 때가 많다. 작은 공간에서 장시간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구간을 지나면서 풍경을 보면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


3. 천안-신창 드넓은 평야

경인선 열차를 타면 역이 많아 숨 좀 돌리려 할 때 다음 역에 도착하는 때가 많다. 그런데 경부선은 어느 정도 구간을 넘어서면 한참을 가도 다음 역이 안 나온다. 그때 오래 보이는 게 논과 밭이다. 우리나라 땅이 세계적으로 작은 편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드넓게 펼쳐진 평야를 보면 ‘이렇게 개발 안 된 곳이 많다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구간을 지나는 동안 중간에 있는 역인 탕정역은 신도시 개발하는 것처럼 여러 건물이 올라서는 게 보여 이질적이다. 그런 반전적 재미를 느끼는 것도 묘미 중 하나다.


4. 회기-월계 주택가

역과 그 주변 거리가 오래된 게 눈에 보인다. 2020년대임에도 90, 2000년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은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 회색의 높은 건물만 높이 서 있는 것보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기분이 전환되는 게 있어 좋아하는 구간이다.


단지 이동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전철 역이지만 자세히 보면 볼거리도 꽤 있는 게 전철 역이다. 많은 이가 기회가 된다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역마다 느낄 수 있는 정취를 찾아보는 재미를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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