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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Dec 16. 2024

등잔 밑이 어둡다

인연은 가까운 데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나도 저런 사랑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연예인들을 보며 외적인 이상형을 만들고, 내 성격과 취향을 고려해 그에 걸맞은 내적인 이상형을 만들어 조합했다. ‘이 정도면 적당하다’라는 생각으로 남들에게 조심스레 이상형을 밝히면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너는 참 눈이 높다.”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있다고 해도 나를 만나주지 않을 거라는 반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조건을 떼어내고 눈높이를 낮추어보지만, 여전히 나는 연인이 없다.


짝에 대한 고민은 인류 역사 내내 있었을 것이다. 눈에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표적이 있다면, 그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일 없이 바로 사랑에 성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사랑을 해도 사랑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 같은 사랑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남들은 쉽게 사랑하는데 왜 나만 사랑이 어려운 걸까. 고뇌에 빠진다.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주인공도 그렇다.



서울의 아파트 상가에 있는 은행의 은행원 봉수(설경구)는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아내다.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모를 아내를 기다리는 그에게 맞은편 학원의 강사 원주(전도연)가 주변을 맴돈다.



영화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봉수는 참 성실하고 착하다. 은행 CCTV를 끝까지 돌려 보고 별일 있지 않는 한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유리창을 출근길에 항상 점검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인 원주가 형광등을 갈아달라고 하니 선뜻 도와준다. 성실하고 착하다는 것이 깨끗하다는 것은 아니다. 봉수는 유흥도 즐기는 남자다. 원주도 마찬가지다. 원주는 겉으로는 맹해 보인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며 알고 보면 사랑에는 깜빡이 없이 돌진하고 자기 할 말 똑 부러지게 하는 당돌한 여자다.



봉수는 미래의 아내에게 영상 편지를 자주 남긴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은행 CCTV를 활용해 봉수에게 영상 편지를 남기는 원주를 보며 어디선가 왜 자기를 못 찾느냐고 타박하는 미래의 아내가 그려지기도 했다. 이런 고요 속 외침을 펼치는 평범한 두 사람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에는 이를 예쁘고 낭만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장치가 없다. 흔히 보이는 우리네 모습이다. 그래서 정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반복되는 것 같은 상황에 밋밋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삶이니 지저분하기보다 깔끔해 보인다. 만약 내가 드마나 소설에 나올 법한 사랑 이야기를 직접 겪었다면 요새 잘나가는 탕후루보다 달콤하다고 행복하다고 여겼을까? 여러 위기와 음모에 살며 온갖 스트레스로 정신 차리지 못했을 것 같다. 사랑하면 달콤한 건 매한가지일 텐데 일부러 공포와 전율까지 첨가할 필요가 있나. 평범한 것도 장점이다. 



우리는 편견 속에 산다. ‘쟤는 저럴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렇게 산다면 정말 행복하겠지?’ 겪지 못했지만 내가 그리는 상황이 최고의 상황일 거라고 기대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가진 편견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인연을 멀리하고 인연이 만들어질 기회를 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떨 것 같은지 판단하고 만나지만 처음에 보지 못한 면을 보며 새로움을 느끼고 더 애정이 커지기도 하는 게 사람 관계고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몸소 체험하고 탐구하는 과정의 집합체가 아닐까. 이렇게 개똥철학과 이론을 정립하며 연애 고자는 오늘도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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