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 - 철도 인생
철도 업무를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현장직이다. 회사에서 ‘사무’라고 표현하는 역 업무도 따지고 보면 현장에서 하는 일이다. 역의 사무를 돌보기는 하지만 역이라는 현장에서 고객을 대하고 상황에 대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직원의 대부분이 현장직인 이 회사에서 사무, 행정 같은 일을 전담하기는 쉽지 않다. 역과 운전, 차량, 전기 등 업무를 총괄하는 본부, 본사라는 곳이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 비하면 그 수가 터무니없이 적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승진의 기회도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는 야심이 있어서, 누군가는 고된 현장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누군가는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싶어서 현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누군가는 더 많은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다소 단순한 업무의 반복인 현장에 머물고 싶어 한다. 나는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수십 년을 현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고인 물’이라고 말하곤 했다. 여러 경험을 살려 더 높은 곳으로 가서 회사가 나아지게 회사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나아지게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현실에 안주한다고,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를 토대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그 인식이 점점 누그러졌다.
입사 초기에 현장의 선배도, 본부, 본사의 선배도 한 목소리로 했던 말이 기억난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라고. 하나의 업무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업무는 역, 열차, 차량, 전기, 시설 등이 각자 이뤄져 따로 운영되는 게 아니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엮여 있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철도라는 특수한 환경에 놓여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는 더욱 그렇다. 조언해 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했는지, 말만 그렇게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이 참 회사 일을 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때부터인지 현장에 있는 사람은 무능력하고 본부, 본사에 있는 사람들은 능력 있는 이로 보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회사의 젊은 사람은 조급하다. 우리 회사의 최근 화두 중 하나는 승진이다. 경력, 소위 말하는 ‘짬’ 순이 아닌 근평에 따른 시험 승진 때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더 일찍 승진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시험 응시 자격을 얻는 사람은 본부, 본사 직원이다. 이들이 모두 현장의 직원보다 잘난 사람들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런데도 누구보다 빨리 승진해야 하고 그 길이 본부, 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건 사내 문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 문화로도 분석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팽배한다. 누구보다 잘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성공 희망적인 삶이다. 회사라는 곳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계속 위로 쭉쭉 올라가는 것? 그것이 만약 성공이라면 그 성공은 반쪽짜리다. 위치는 그럴지 몰라도 자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상응하는 경험과 지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본부, 본사에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수월하게 일하려면 각종 문서나 매뉴얼, 법령을 알면 좋다. 하지만 그것의 내용만 꿰뚫고 있으면 안 된다. 여전히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 모순된 내용이 많다. 사고가 나면 더 복잡하게 여러 매뉴얼과 법령이 개정된다.
그럴 때마다 현장에서는 말한다. 경험도 없는 사람이 보여주기식으로 바꾼 거라고. 현장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채 머리로만 구상한 것을 내세우면 일이 더 힘들어지고 위험해진다. 경험 없이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사람만 많으니, 회사는 발전이 없다. 하지만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이들이 현장에 상명하달식으로 업무를 지시한다. 말도 안 되는 걸 시키는 공문이 늘고 있다. 현장의 안전과 편의를 생각하는 게 아닌 경험이 있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생각을 참신한 생각이라 여기는지 문서대로 따르기를 바라는데 현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나올 수가 없는 생각이 많다. 회사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기획이나 업무 개선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개정은 지식과 경험이 맞물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현장도 마찬가지다. 개정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공부하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건의해야 한다. 하지만 불만만 가득하다. 경험 없이 매뉴얼을 개정하는 사람, 매뉴얼을 익히지 않고 경험으로만 대결하려는 사람. 현재 우리 회사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서로를 비난하는 일과 사고가 늘어난다.
우리 회사는 지금 비정상적이다. 서로 자기 몫 챙기는 데 애만 쓰는 회사가 되고 있다. 파이가 작다면 그 크기에서 최고의 효율을 만들거나 파이를 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작은 파이에서 어떻게든 내 몫을 크게 하려고만 고민한다. 파이의 크기는 커지지 않고 못 먹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자기 상승과 생존에 신경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사회가 경쟁과 계급 구조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현실이 안타깝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렇기에 현장의 경험과 위에서의 경험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 여전히 어린 사람의 축에 속하지만 나는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이 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냥 제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일도 겪어보니 시야가 넓어졌다. 지나치려 했던 것도 하나씩 습득하니, 마치 쪼개진 지도를 찾아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눈이 뜨였다. 어렵게 느껴지던 용어도 이해되고 상황 파악도 쉬웠다. 그만큼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도 향상했다. 내 지금의 이 행보가 느리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으나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울 기회라 생각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든 안 주어지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